나는 어릴 적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주인공이 어린 시절 자신의 흔적을 찾아내고선 정말 까맣게 잊고있었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클리셰를 공감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고해도 본인이 했던 저렇게 명백한 사실을 어떻게 까먹지? 나는 모든걸 다 기억할테야!' 그러했던 소년을 어느새 28살이되는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 어린 시절 만들었던 자신의 블로그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블로그라는 새로운 인터넷 세상이 그저 신기하던 소년은 어느새 시간의 흐름이 무겁고, 두려운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매일의 출근과 퇴근, 돈과 인간관계가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주변에서 나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두려워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주저하고, 돈이 없으면 삶에서 중요한 무수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는 두려움에 오늘의 순간을 불안속에 사는 어른이 되었다. 소년은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피터펜 증후군에 빠진 채로 살아남기에는 험난한 세상이기에 이는 분명히 잘 된 일이다. 이러한 고난과 사회적 눈치가 없었다면 이만큼 내 삶을 쌓아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블로그를 발견한 오늘만큼은 내 인생에 무언가를 쌓아올리기보다는 그저 삶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무언가를 쌓아올리고 있단 말인가.'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서 생각하겠지만, 이내 곧 관성적으로 몸을 움직일 것이다. 무언가를 쌓아올리기 위해.
망각이 있기에 이러한 반가운 만남이 있을 터이다. 내 삶의 흔적들이여 언젠가 또다시, 생각지 못한 순간과 장소에서 만나자. 또다시 그대들을 마주하는 그 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현명하고 행복한 내가 되어있기를. 또 그 만남이 내 일상에 기분좋은 잠깐의 환기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