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엽撤獵 — 물고기 잡던 그 여름, 감자와 함께였지

撤獵

by 마루

철엽撤獵 — 물고기 잡던 그 여름, 감자와 함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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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시골 냇가로 향하던 그 여름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 마음 한켠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그걸 **‘철엽(撤獵)’**이라고 불렀다.
철(撤), 엽(獵).
말 그대로 계절이 허락하는 시기, 냇물 속 생명들을 향해 떠나는 작은 사냥이었다.

아버지는 전날부터 어항, 족대, 투망, 장화를 하나씩 꺼내 점검하셨고,
나는 작은 양동이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모래가 고운 계곡가에 자리를 잡으면, 물을 퍼서 국물 낼 냄비를 씻고,
아버지는 족대를 들고 풀숲으로 사라졌다.

그 물소리, 족대가 물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양동이 속에서 펄떡이는 피라미와 버들치.
아버지의 땀이 국물에 섞이고,
나는 물고기 창자 정리를 도우며 냄비 가장자리에 맴돌았다.
아버지가 끓이던 매운탕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다.
그건 단지 국물 맛이 아니라, 시간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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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잡기, 그 짜릿하고 느긋했던 풍경

물고기 잡는 방식은 사람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
누구는 족대로, 누구는 맨손으로,
또 누구는 낚싯대 하나로 조용히 기다렸다.
우리 동네에서는 다슬기도 잡았다.
돌을 들추면 깜찍하게 붙어 있던 그 동그란 생명체들.
누군가는 “똥맛이 난다”고 했지만,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된장에 찍어 먹으면
기억보다 깊은 맛이 났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분감자도 꺼냈다.
불 위에 익힌 붉은 감자,
노란 속살이 툭 하고 갈라질 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누군가 꼭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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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입 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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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뜨거운 감자 하나를 입안 가득 베어 물면,
짜릿했던 물고기 손맛보다
오히려 그 달큰한 위로가 더 오래 남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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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고기를 잡은 게 아니라, 기억을 건졌다

지금은 철엽을 하는 풍경이 거의 사라졌다.
법도 까다로워졌고, 생태계 보호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물소리를 들으면
그날의 족대질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뒷모습, 양동이 속 버들치,
그리고 감자, 매운탕, 웃음소리.

물고기 잡기는 단지 생선을 얻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손을 맞잡던 시절의 의식이었다.
그 의식 속에서 우리는 여유를 배웠고,
기다림을 배웠고,
함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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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요?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물고기를 잡았는지—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기억은 물속처럼 흐릿해질지 몰라도,
그날의 햇살과 감자의 온기는,
언제나 마음속 어딘가에서
다시 김이 피어오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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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어릴 적 여름은 꼭 냇가에 있었다.
물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물고기를 잡는 손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마음이 있었다.
기다림, 웃음, 뜨거운 감자 한입,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

이 글은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기록이자,
지금도 마음속에 살아 있는 철엽撤獵이라는 단어에 바치는 작은 헌사다.
우리가 진짜 잡으려 했던 건, 물고기가 아니라
그 계절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당신에게도 그런 여름이 있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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