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차
초록빛 낯섦과 누룽지의 기억 사이에서
잔 위에 고요히 머무는 초록빛 거품. 첫 모금이 스치자 혀끝에 미세한 가루가 흩날리듯 남는다. 부드럽지만 어딘가 거칠고, 달콤함 뒤에 숨어 있는 쌉싸래한 여운. 미국인 여행자가 그 잔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힐링”이라는 말이 적힌 해시태그와 함께.
한국 카페의 말차라떼는 그들에게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초록빛의 선명한 비주얼은 SNS 속에서 빛을 발하고, 부드러운 크림과의 조합은 ‘웰빙’과 ‘스타일’을 동시에 담는다.
시애틀에선 말차를 위해 줄이 늘어서고, LA 코리아타운에선 한국식 말차 크림라떼가 또 하나의 유행이 된다.
일본에서 건너온 가루차가 한국 카페의 감각을 만나, 세계의 트렌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차는 언제나 다르다. 목을 축이는 구수한 보리차, 잔칫집에서 시원하게 내오던 식혜, 밥을 마치고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떠먹던 숭늉. 차는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소박한 후식이자 국률이었다.
혀끝에 남는 분말의 낯섦보다, 그저 입안을 가득 채우는 구수함이 더 익숙했다.
그래서 한국인에겐 말차가 호불호의 경계에 서 있지만, 외국인에겐 그것이 곧 특별함이 된다. 누군가에겐 입안에 남는 이질감이, 누군가에겐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맛”으로 다가오듯. 한국인의 마음속 깊은 자리는 여전히 숭늉과 식혜의 따스함으로 채워져 있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초록빛 말차라떼가 한국 카페의 세련된 상징으로 비친다.
잔 위에 남은 말차의 흔적과, 오래전 질박한 찻잔에 담겨 있던 보리차의 온기가 겹쳐진다.
서로 다른 기억이 같은 입 안에서 만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한국과 세계가 같은 테이블 위에서 마주 앉아 있음을 느낀다.
작가의 말
외국인의 눈에 특별해 보이는 것은 한국인에게 낯설고, 한국인의 마음에 소중한 것은 외국인에게 전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간극 속에서 오히려 문화는 풍성해지고, 우리는 서로의 차를 마시며 다른 풍경을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