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맛

짜장면

by 마루

시간의 맛


원주 터미널 앞, 낡은 간판의 ‘보배반점’2층에 앉아 있었다.

바깥은 버스 굉음과 바쁜 발걸음으로 가득했지만, 내 앞의 세상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짜장면 한 그릇뿐이었다.

춘장에 버무려진 검은 면발 위로 윤기가 흐르고, 잘게 썬 양파와 돼지고기가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비비자 고소하면서도 달큰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한 가닥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짭조름한 춘장이 혀를 감싸고 탱글한 면발의 탄력과 아삭한 양파의 청량함이 어우러졌다.

그때, 흑백사진이 컬러로 번지듯 오래된 기억이 열렸다.


낯선 시골 마을의 ‘낙원반점’.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불에 그을린 거친 맛, 늘 아쉬울 만큼 적은 양. 그러나 그 한 그릇에는 삶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묵묵한 눈빛의 중국인 여인, 말없이 짜장면을 내어주던 투박한 손. 그 손끝에서 전해지던 뜨거운 온기가 지금 내 젓가락을 타고 흐르는 듯했다.


어린 나는 몰랐다.

그녀가 이 땅에서 버텨낸 밤들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 모든 감정이 짜장면 한 그릇에 스며 있었음을. 그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향신료처럼 강한 외로움과 춘장처럼 끈끈한 고단함, 그리고 먹는 이에게 전하고 싶던 따스함이었다.

혀가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하는 맛이었다.


다시 눈을 뜨니 보배반점의 테이블. 그릇은 비었지만, 남은 춘장 소스만큼이나 진한 여운이 마음에 번졌다.

짜장면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잊고 지냈던 삶을 마주하게 해주는 시간 여행의 문이었다.

맛이란 결국, 시간과 이야기가 버무려진 기억의 한 조각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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