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기억

우리가 간직하는 것과 잃는 것

by 마루

며칠 전, 오래된 구글 포토가 나에게 “추억”이라는 이름의 알림을 보냈다.
그 안에는 십 년 전, 할머니와 함께 웃고 있던 영상이 있었다.
화질은 흐릿하고 소리는 작았지만, 그 안에 담긴 공기는 또렷했다.
그날의 냄새, 웃음, 그리고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까지.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기억이 디지털 속에 살아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잃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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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편리함, 기억의 거리감

디지털은 참 친절하다.
내가 잊을 때쯤, 잊고 싶을 때쯤,
“이날 어땠어요?”라며 다시 꺼내 보여준다.
사진, 영상, SNS의 흔적들.
하지만 그 속의 나는 늘 카메라 너머에 있다.
웃고 있지만, 기록을 의식한 웃음.
감정보다는 구도의 정렬이 먼저인 웃음.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
기억은 ‘기록된 나’를 중심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디지털 속 기억은 나를 보여주지만, 나를 대신한다.

저장이 아니라 복제되는 감정들

예전엔 사진 한 장을 인화하기 위해
하루 종일 사진관을 오갔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손끝으로 수천 장을 찍고,
클라우드가 알아서 분류하고, AI가 알아서 보정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완벽한 사진들 속에서는 감정이 덜 느껴진다.
복제된 웃음, 자동 보정된 하늘,
그리고 어쩐지 덧없어진 ‘그날의 온도’.

우리는 기억을 저장하고 있지만,
감정은 복제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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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편리함, 인간의 망각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은 우리의 기억을 대신 저장해준다.
그러나 기억은 데이터처럼 안전하게 쌓이는 게 아니다.
그날의 냄새, 촉감, 온기 같은 것들은
파일 형식으로 남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 잊히는 건 사진 속 인물이 아니라,
그때의 ‘나’일지도 모른다.

결국 기억은 마음에 남는다

며칠 전, 오래된 외장하드 속에서
어린 시절 사진을 한 장 꺼냈다.
색이 바래고 구겨진 사진이었지만
그 안의 나는 확실히 살아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기억을 지키는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잊지 않으려는 마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결국 디지털보다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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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기억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감정의 언어다.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그중 진짜 기억은 마음속에만 남는다.
오늘 내가 기록하는 이 글 또한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그 감정만큼은 오래도록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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