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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언어, 말하지 않는 안경

메타의 AI 고집에 대하여

by 마루


보는 언어, 말하지 않는 안경 — 메타의 AI 고집에 대하여


글|감자공주


1. 레스토랑에서 만난 미래


며칠 전, 레스토랑에서 메타의 스마트 안경 시제품을 직접 써볼 기회가 있었다.

놀라웠다.


조명이 쏟아지는 공간에서도 화면은 선명했고, 태양을 향해도 눈이 시지 않았다.

디스플레이는 분명 눈앞에 떠 있었지만, 옆 사람은 내가 무언가를 보고 있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디스플레이가 없는 디스플레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그 순간, 나는 기술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를 실감했다.

렌즈 속에서 문자가 흘러가고, 사물의 이름이 번역되고, 카메라가 나 대신 사물을 인식하는 그 경험은

마치 ‘보는 언어’를 만지는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안경이 만약 ChatGPT나 OpenAI 같은 언어 AI를 품고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대화적이고, 인간다운 기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메타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자체 AI’를 고집하고 있다.

왜일까?


2. 메타의 안경, ‘보는 기술’의 정점


지금의 메타 안경은 단순한 웨어러블 기기가 아니다.

렌즈 안에는 반사형 파장 가이드(waveguide) 기술이 숨겨져 있다.

이 시스템은 디스플레이의 빛을 렌즈 안쪽으로 반사시켜,

착용자만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한다.


iFixit의 분해 보고서에서도 이 기술은 핵심 부품으로 지목됐다.

즉, 메타는 **‘보이지 않게 보여주는 기술’**을 완성한 셈이다.


여기에 더해, 메타는 점차 AI 번역, 사물 인식, 맥락 기반 반응까지 확장하고 있다.

이제 카메라는 단순히 ‘찍는 눈’이 아니라, ‘이해하는 눈’이 되어가고 있다.


하드웨어와 기본적인 AI 기능 구현만 놓고 본다면,

메타의 안경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뛰어난 하드웨어 위에 왜 OpenAI 같은 언어 모델을 탑재하지 않는 걸까?


3. 메타가 외부 AI를 품지 않는 이유들 — 감춰진 전략과 철학


메타의 선택에는 단순한 기술적 이유를 넘어,

기업 철학과 생태계 전략이 깊게 깔려 있다.


(1) 자율성과 통제 유지 — 메타버스 주도권의 본능


외부 모델을 탑재한다는 건, 그 모델의 정책과 업데이트에 종속된다는 뜻이다.

만약 ChatGPT를 그대로 넣었다면,

OpenAI의 비용, 정책, 서버 상태에 따라 메타의 제품이 흔들릴 수 있다.


메타는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세계를 설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위치할 AI는 외부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 안에 있는 기술’**이어야 한다.

이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2)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통제 — ‘보는 기계’의 윤리


안경은 다른 어떤 기기보다도 ‘인간의 시선’을 담는다.

눈앞의 풍경, 표정, 대화, 문장—all captured.


이 데이터가 외부 AI 회사로 흘러간다면,

그건 단순한 개인정보 노출이 아니라 **‘시선의 유출’**이다.

그래서 메타는 데이터 흐름을 내부로 묶어두려 한다.


‘보는 기계’를 만드는 기업은,

그만큼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볼 책임도 함께 지는 법이다.


(3) 비용과 지속 가능성 — “AI도 결국 사업이다”


AI API는 매 호출마다 비용이 발생한다.

안경처럼 실시간 반응이 필요한 기기에서는

수천, 수만 번의 호출이 누적되면 비용이 감당되지 않는다.


게다가 OpenAI나 다른 기관의 라이선스 정책이 바뀌면

메타는 그 변화를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

결국, 자체 AI는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구조를 만든다.

기술의 이상보다 ‘비즈니스의 현실’을 택한 셈이다.


(4) 전략적 차별화 — ‘메타 경험’의 완결


메타는 소셜, VR, AR, AI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를 그리고 있다.

외부 AI를 쓰면 빠르고 편리할 수 있지만,

그건 곧 **“메타만의 세계”**를 포기하는 일이다.


그들은 안경마저 메타 플랫폼의 일부로 만들고 싶어 한다.

즉, AI 안경조차 **‘메타버스의 입구’**로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5) 기술적 현실 — 안경이라는 한계


고성능 언어 모델은 크고, 무겁고, 전력 소모가 크다.

이 작은 안경 안에 그 모든 걸 담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메타는 지금,

‘일부 연산은 기기 안에서, 나머지는 스마트폰이나 서버에서’

나누어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


결국, 하드웨어 제약 속에서 최적의 타협점을 찾는 과정일 수도 있다.


4. 메타의 ‘언어적 고집’, 과연 옳은 선택일까


메타의 결정은 분명 전략적으로 일관성 있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길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장점:


모든 기술이 메타의 설계 의도대로 통제된다.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줄어든다.


메타 생태계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단점:


언어적 깊이에서 OpenAI 같은 거대 모델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자체 모델 유지 비용이 막대하다.


빠르게 진화하는 외부 AI와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조화가 깨질 위험이 있다.


즉, 메타의 고집은 ‘통제의 완성’과 ‘언어의 한계’ 사이의 줄타기다.


5. ‘보는 언어’는 충분한가


레스토랑에서 그 안경을 썼을 때,

나는 분명 미래를 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언어의 부재’를 느꼈다.


눈은 모든 걸 보는데,

그 본질을 해석해줄 ‘말’이 없었다.

사물을 인식하고 번역하는 건 가능했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질문에 대한 대화적 응답은 없었다.


그건 마치 말하지 못하는 눈 같았다.


기술은 이미 “보는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 필요한 건, ‘보는 것’을 말로 바꿔주는 기술,

즉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함께 사고하는 AI다.


작가의 말


기술은 결국 언어의 확장이다.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 세상을 보는 시대는 이미 왔다.

하지만 그 기계가 우리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메타는 ‘보는 언어’를 완성했지만,

이제는 ‘말하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로 대화할 수 있는 기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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