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그냥 지나쳐야만 할까?
10월만 되면 유튜브는 변신한다.
해골, 박쥐, 보라색, 분홍빛 이펙트.
홈 로고부터 영상 추천창까지 ‘죽음의 유쾌함’이 흐른다.
하지만 이 장면을 한국인의 정서로 본다면?
가벼운 웃음보다는, 기묘한 위화감이 먼저 느껴진다.
우리에겐 “죽음”이 놀이의 대상이 아니라, 정중한 침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vs
�� 한국의 “죽음 = 감정의 무게”
미국은 할로윈을 **“공포를 덜어내는 의식”**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죽음을 조용히, 무겁게 받아들이는 정서 구조에 있다.
그러니 해골 로고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정서적 간극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유튜브는 글로벌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감정은 ‘글로벌하지 않다’.
특히 한국은 **기억과 감정, 예(禮)**를 중시하는 문화다.
죽음을 웃으며 소비하는 문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플랫폼은
“이 문화에서는 이 기능이 비활성화됩니다” 정도의 선택권을
줄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할로윈 이벤트는 예쁘고, 가볍고, 트렌디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죽음이 그렇게 웃어넘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 저승사자는
검은 갓을 쓰고 조용히 길을 안내하는 자다.
그는 웃지 않고, 농담도 하지 않는다.
그 조용한 죽음의 결을 깎아내지 말아야 한다.
유튜브, 다음엔
“문화별로 공포를 해석하는 방법”을 영상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한국의 삼베 수의와 제사상
일본의 오봉 축제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미국의 할로윈
그게 진짜 ‘글로벌’ 플랫폼이 가진
문화 번역의 힘 아닐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