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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여인

by 마루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푸른 바다와 풀밭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혜진은 오늘도 헬멧을 벗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 머물러 있던 어떤 공허함,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해 이 길 위에 나섰다.


처음 이 바이크를 만난 건, 마치 운명 같은 순간이었다. 도심의 오래된 차고 한 구석, 먼지 쌓인 커버 아래에서 잠들어 있던 카와사키 W800. 누군가는 더 편하고 최신식인 바이크를 권했지만, 혜진은 이 클래식한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다. 조금 비싸게 주고 샀지만, 현대적인 기종보다 이 오래된 감성과 함께 달리는 것이 그녀에게는 더 큰 의미였다.

여자로서 바이크를 타는 일은 혜진에게는 일종의 자유 선언이었다. 세상의 시선과 기대, 그리고 스스로에게 걸어둔 제약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그녀는 핸들을 잡았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순간만큼은 누구의 딸도, 누군가의 연인도 아닌 오직 ‘혜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었다.


오늘도 그녀는 시동을 걸었다. “계속 달려, 혜진. 너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야.”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언덕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리고 알았다. 이 길 위에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작가의 말


카와사키 W800은 일본 카와사키에서 2010년대 초반부터 생산한 클래식 바이크입니다. 공랭식 773cc의 병렬 2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있으며, 레트로한 디자인과 특유의 감성으로 많은 라이더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혜진처럼 현대적인 기종보다 이런 클래식한 매력에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이 바이크는 단순한 탈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반자 같은 존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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