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둘이던 시대가 끝났다
글 | 감자공주
한때 한국 라면 시장은 단순했다.
‘삼양이 원조, 농심이 1위.’
그 뒤를 쫓는 회사들은 그냥 ‘기타’였다.
그러나 2020년 이후, 판이 달라졌다.
라면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국민 기본 라면이 아니라, ‘개인 취향의 라면’**이 되었다.
이 변화의 신호탄을 쏜 건, 거대 기업이 아니라 유튜브 세대였다.
“라면은 밥이 아니라 콘텐츠다.”
팔도는 1등을 빼앗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취향을 쪼개는 전략’**을 선택했다.
비빔면 – 여름 한정 라면을 ‘국민 계절 라면’으로 격상
꼬꼬면 – “맑은 라면도 된다”라는 새로운 맛의 논쟁 개시
팔도 도시락 – 피크닉/군대/여행 감성으로 세대 기억 점유
왕뚜껑 – “뚜껑이 곧 그릇”이라는 편의성 혁명
팔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왕이 될 생각 없다.
하지만, ‘내 라면’이라 불릴 순간을 노린다.”
오뚜기는 CF도 과장되지 않는다.
라면도 튀지 않는다.
그런데 오뚜기라면은 ‘집밥 정서’의 최종 보루가 되었다.
진라면 – 평범의 끝이 결국 표준이 된다
열라면 – 신라면보다 싸지만, 매운맛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치라면 – “집 김치 국물 같은 라면”이라는 심리 대체
스낵면 – 가격·속도·최소 부담 = 라면의 인스턴트 본질 회복
오뚜기는 삼양처럼 추억을 말하지 않았고,
농심처럼 권력을 쥐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밥상에 앉은 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냥, 라면 한다.”
라고 하면서 꾸준함 자체를 마케팅으로 만들었다.
세대는 라면을 한 끼가 아니라 놀이 + 챌린지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불닭 5개 먹기 챌린지"
"신라면에 초코시럽 넣으면 무슨 맛?"
"편의점 라면 조합 레시피 탑 10"
"외국인이 가장 고통받는 한국 라면 TOP3"
라면은 더 이상
〈국민식품〉이 아니라,
〈조회수를 움직이는 무대〉가 되었다.
그 무대에서 가장 살아남기 쉬운 브랜드는,
왕도 아니고, 원조도 아니다.
튀는 브랜드
섞일 수 있는 브랜드
‘재미’가 되는 브랜드
그래서, 불닭이 떴고
그래서, 팔도 비빔면이 여름마다 다시 살아나고
그래서, 진라면은 SNS에서 "PPL 없어도 꾸준히 먹히는 라면"이 되었다.
1980~2000: TV 광고가 라면을 정했다
2000~2015: 마트 매대가 라면을 정했다
2016~2025: 유튜브 알고리즘이 라면을 정한다
이제 브랜드가 묻는 질문은 바뀌었다.
“우리가 1위냐?”가 아니라
“우리가 영상에 등장할 가치가 있느냐?”
1편이 추억이었다면,
2편은 신뢰였고,
3편은 선택의 시대다.
라면은 더 이상 ‘국민 기본값’이 아니다.
각자의 라면, 각자의 정답, 각자의 취향이 생겼다.
“누가 왕이냐”보다
“누가 불리느냐”가 중요한 시대.
나는 지금도 라면을 끓이며 생각한다.
“라면은 변했지만,
라면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더 풍성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