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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맛이 아니라 ‘신뢰’를 팔아 왕이 되다

라면 연대기 3

by 마루


농심, 맛이 아니라 ‘신뢰’를 팔아 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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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감자공주


소기름 파동 이후, 시장은 ‘맛’이 아니라 ‘안심’을 선택했다

1989년. 삼양은 법정 싸움이 한창이었고, 언론은 “소기름 공포”를 확대 재생산했다.
그날 이후, 한국인의 라면 취향은 바뀌었다.
맛의 시대에서, 안심의 시대로.

소비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 이미 결정했다.

“맛있는 라면보다, 괜찮을 라면을 고르겠다.”


그 작은 틈을 농심은 정확히 노렸다.

농심이 파는 건 ‘라면’이 아니라 ‘심리적 안전’이었다

삼양이 “맛의 원조”라면
농심은 “라면의 기준”을 설계했다.

삼양은 기름의 고소함을 이야기했지만,
농심은 엄마의 장바구니를 설득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라는 슬로건은
라면이 아니라 가족 서열을 흡수한 심리 장치였다.


이건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가부장적 정서’를 활용한 마케팅이었고,
결과는 단순했다.

아이에게 먹여도 되는 라면
엄마가 안심하고 사는 라면
아버지가 대충 집어도 실패 없는 라면
→ ‘라면의 기본값 = 농심’


신라면의 성공은 ‘매운맛’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신라면이 매워서 성공했다고 말한다.
절반만 맞다.
신라면의 진짜 전략은 이거다:

“어떤 집에 가도, 기본 라면은 신라면이다.”


그건 라면의 랜드마크화였다.
맛의 강도보다, 존재의 표준화에 성공한 것.

삼양이 “맛있다” 싸움에 머물 때,
농심은 이렇게 물었다.

“라면 시장은 결국 **누가 ‘평균’을 장악하느냐의 싸움 아닐까?”


그리고 그 평균값을 자기 이름으로 고정해버렸다.
그게 30년 1위 브랜드의 힘이었다.

삼양이 기술로 싸울 때, 농심은 ‘심리’로 이겼다

삼양 = “맛의 원조, 기술의 정통”
농심 = “라면이 아니라, 라면을 둘러싼 감정까지 점령”

삼양은 “잘 끓여 드세요”라고 했고
농심은 “믿고 고르세요”라고 말했다.

기술은 정답을 말해주지만, 심리는 선택을 만들어낸다.
승패는 그 차이에서 갈렸다.

5. 그러나 2020년대, 농심의 왕좌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 균열을 만든 건 경쟁사가 아니라, 세대였다.

유튜브 세대는 “기본값”보다 “도전적 맛”을 택한다
“안전한 라면”보다 “찍어 올릴 라면”을 찾는다
라면의 권력은 TV 광고에서 → SNS 밈으로 이동했다
‘엄마’가 아니라 ‘나’가 선택권을 가진 세대

그 세대가 먼저 집어 든 라면은
농심이 아니라 불닭이었다.

흐름이 바뀌고 있다.
라면 시장은 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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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라면은 단순한 식품이 아니다.
그건 시대가 무엇을 믿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기본값’으로 삼았는지 보여주는 식탁의 기록이다.

삼양이 추억을 잃었을 때,
농심은 ‘신뢰’를 잡았다.

그러나 이제 신뢰의 방식도 변하고 있다.
라면을 고르는 손가락은 더 이상 TV 광고의 세대가 아니다.

“이제 라면의 권력은, 입이 아니라 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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