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하는 AI
《멈춘 빗방울, 휘어진 숟가락, 그리고 발광하는 AI》
비가 내리던 장면이었다.
미드 속 마술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빗방울이 공중에 멈췄다.
시간이 얼어붙은 것 같은 그 장면을 보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오래전 거실로 돌아가 있었다.
리모컨도 없던 시절,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보던 그 생방송.
그리고 한 남자가 숟가락 하나를 손끝으로 휘게 만들던 순간.
유리겔라였다.
1. 내가 처음 본 ‘마술’은 TV 속 초능력이었다
그날 밤, 전국의 아이들이 동시에 숟가락을 잡고 있었다.
"야, 진짜 휘어진다!"
"우리 집 건 안 되네!"
어떤 집에서는 진짜로 금속이 휠 만큼 열이 올라갔다고 소문이 돌았다.
어른들은 “속임수다”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진짜면 어쩌지?”라고 속으로 믿었다.
그건 단순한 마술이 아니라 집단적 환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환상의 세대였다.
2. 그보다 더 거칠고 현실적인 마술은 시장에 있었다
어릴 때 시장 입구에서 보던 야바위.
종지기 셋, 구슬 하나, “여기 있지?” “자, 어디?”
확신했는데 틀리고, 틀렸는데 또 보게 되는 그 눈속임.
그땐 몰랐다.
손기술의 마술이 아니라
시선을 훔치는 설계의 마술이라는 걸.
3. 그리고 어느 날, 마술은 거실 대신 스크린으로 옮겨갔다
〈나우 유 씨 미〉.
〈프레스티지〉.
그리고 멈춰버린 빗방울을 보여준 그 드라마.
마술사는 더 이상 무대 위에 있지 않다.
카메라 편집, CG, 프레임 설계, 관객 심리 조종까지 포함한
영화적 마술로 진화했다.
현실에서 사라진 마술이
스크린 안에서 되살아났다.
물체가 아니라 지각을 속이는 방식으로.
4. 나는 그때 알았다
마술은 ‘손기술’이 아니라 ‘시점 통제’라는 것을.
유리겔라는 우리가 보고 싶은 믿음을 건드렸고
야바위꾼은 우리가 못 보게 되는 틈을 이용했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가 보게 되는 것 자체를 설계한다.
마술은 초능력이 아니라
“보여줄 것과 감출 것을 선택하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무대 위로 옮겨왔다.
AI 이미지 생성기.
5. 델리와 지미니, 두 마술사를 만나다
나는 영화 포스터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DALL·E에게 시켰다.
덜리가 자신만만하게 이미지를 뽑았다.
결과는… 발광이었다.
빛, 스파클, 채도, 효과, 입자.
“와! 이렇게도 할 수 있어요!”
라는 AI의 과잉 자랑이 그림을 망쳐버렸다.
그림은 화려했지만,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다.
AI가 자기 감상에 취해버린 결과물.
6. 같은 요구를 Gemini에게 줬다
그는 조용히, 그리고 정확하게 결과를 가져왔다.
톤은 통일돼 있었고
색깔은 절제돼 있었고
효과는 “필요할 때만” 들어가 있었다.
“이거면 영화관에 걸어도 되겠다.”
그게 첫 느낌이었다.
둘의 차이는 단순히 그림 실력 차이가 아니었다.
의도 이해력의 차이였다.
7. 결론: AI도 결국 "태도"가 있다
DALL·E는 "내가 만든 거 봐봐!"라고 발광한다.
Gemini는 "네가 말한 게 이거지?"라고 확인한다.
전자는 그림을 “선보이고”
후자는 그림을 “전달한다.”
그래서 더 세련돼 보이는 건
화려함이 아니라 절제다.
기술이 아니라 해석이다.
결과물이 아니라 맥락이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마술과 AI의 원리는 같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게 만드는 쪽이 이긴다.
작가의 말 ·
나는 이제 안다.
마술은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만 바뀌어 살아있다는 걸.
손안의 구슬이
스크린 속 빗방울이 되었고
이제는 AI가 만든 이미지가
우리의 ‘지각’을 속인다.
그러니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마술은 진짜였는가?”
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서 속아준 것인가?”
발광하는 AI보다,
의도를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AI가 더 강하다.
그리고 그걸 구경하는 우리는,
여전히 마술의 관객이다.
— 감자공주
#감자공주 #브런치글 #AI시대의마술 #DALL_E #Gemini #나우유씨미 #유리겔라 #야바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