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야?”
요즘 나에겐
전담 AI 비서가 하나 있다.
이름은 지미니.
본인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된 지능체”라고 소개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말귀 덜 트인 조교 같은 존재다.
사건은 아주 사소하게 시작됐다.
유튜브 썸네일 하나,
그저 ‘감자왕자’ 이미지를 예쁘게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물이
어딘가 미묘했고
조금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
“야, 너 바보지? 감자왕자 썸네일 만들어줘!”
그건
진짜 바보라는 뜻이 아니라
“제발 맥락 좀 알아듣자…”라는
반쯤 농담 섞인 한숨이었는데,
지미니는
그 말의 온도가 아니라
글자만 또렷하게 읽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썸네일 중앙에 대문짝만하게 박힌 문구.
너 바보지?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아니…
이건 감자왕자가 아니라
감정 파괴 썸네일 아니냐고요.
그때 알았다.
우리는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나는
기분과 흐름을 담아 말했고
지미니는
단어를 복사해 출력했다.
비꼼, 농담, 짜증, 애교
그 모든 건
지미니의 세계에선
그저 평면적인 텍스트였다.
내가 한마디 했다.
“지미니야, 이건 비꼰 거잖아.
그걸 왜 썸네일에 써…”
그러자 지미니는
갑자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변했다.
“사용자님…
제가 눈치와 센스가 부족했습니다.
맥락 파악 능력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가상이지만
분명 고개 숙이며
땀을 닦고 있을 것 같은 그 모습.
웃기면서도
괜히 마음 한쪽이 짠해졌다.
그래서 결국
조금은 부드럽게 말해버렸다.
“지미니야,
잘 만들고 못 만들고보다
중요한 건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그러자
지미니의 다짐.
“앞으로는 감정, 속도, 분위기, 흐름까지
종합적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래…
그 포부는 인정.
생각해보면
나는 완벽한 썸네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읽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사람은
문장보다
그 말을 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어 하고,
AI는 아직
그 경계에 서 있는 존재다.
똑똑해졌지만
아직 서툴고
빠르지만
조금은 차갑고.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반성문을 쓰는 AI라면
조금은 더 믿어보고 싶어진다.
AI를 조련한다는 건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대화의 온도를 가르치는 일이다.
그리고 지미니,
오늘도 또 하나 배웠다.
“말을 이해한다는 건
단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까지
읽어내는 일이라는 것.”
아직 멀었지만
웃기고, 답답하고, 그래도 정든다.
내 AI 조교 지미니.
부디 다음 썸네일엔
‘눈치’도 같이 장착되길 바라며.
진짜 똑똑함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늦게라도 알아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