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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노란빛의 키링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코닥

by 마루

흐릿한 노란빛의 키링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이건 ‘장비’라기보다 작은 기억 덩어리에 더 가까워 보였다.


장난감처럼 가벼운 몸체,

1980년대 코닥 일회용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디자인,

그리고 셔터를 누를 때 나는 묘하게 둔한 소리.


이 카메라의 정체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레트로 키링 미니 디지털 카메라.

코닥 스타일을 차용한 서드파티 제품이 대부분으로,

‘Kodak Style Keychain Camera’, ‘Retro Mini Digital Camera’ 같은 이름으로 판매된다.

✔ 실제 판매 가격은


저가형 : 약 29,000원 ~ 39,000원


일반 유통 : 55,000원 ~ 70,000원


브랜드 패키지형 : 80,000원대까지도 형성된다.


해외 직구로 구매하면 3만 원대 초반에서 시작하지만

국내 유통 제품은 배송비와 브랜드 프리미엄이 더해져

대부분 6만 원 내외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선택하는 이유는

가격도, 성능도 아니다.


스펙은 솔직하다.


0.3~1.0MP 수준의 사진 해상도


720p급 영상 촬영


microSD 카드 사용


USB 충전


작은 LCD 디스플레이


요즘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부족하다 못해 어설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불완전함이 지금의 감성을 만든다.


사진을 찍고 화면을 들여다보면

윤곽은 흐리고 색감은 번지며

노이즈가 마치 기억의 먼지처럼 얹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장면이 오래 남는다.


완벽한 선명함은 빠르게 잊히지만

불완전한 이미지는 마음에 머문다.


이 카메라가 유행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 선명한 세상,

너무 정확한 기록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흐림’을 통해 진짜 감정을 찾는다.


여행지의 노을,

창가에 기대 앉은 친구의 뒷모습,

커피잔 너머 흔들리는 오후의 공기.


이 카메라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분위기를 남긴다.


그래서 이건

촬영 도구가 아니라

‘기억 보관함’에 가깝다.


가방에 달린 작은 키링 하나가

오늘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사진을 잘 찍으려는 마음 대신

그 순간을 느끼려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흐릿한 사진을 다시 바라볼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아,

이건 사진이 아니라

그날의 감정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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