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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과 GDDR, 기술의 전쟁이 아니라 ‘방식의 차이

지금 우리는 최고의 스펙보다 ‘맞는 도구’를 고르는 시대

by 마루

HBM과 GDDR, 기술의 전쟁이 아니라 ‘방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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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최고의 스펙보다 ‘맞는 도구’를 고르는 시대에 서 있다

AI 반도체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연히 ‘HBM이 더 좋다’는 식의 결론으로 흐르곤 합니다.
가장 빠르고, 비싸고, 복잡하고, 강력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이 흐름을 보면서
기술을 평가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전처럼 “스펙이 곧 모든 것”인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적합한가, 어디에서 밸런스가 맞는가입니다.

HBM — 절대성능을 위해 모든 걸 건 구조

HBM은 한마디로 ‘극단적 설계’입니다.
칩을 위로 층층이 쌓고, 그 사이를 초고속 통로(TSV)로 관통시키는 방식.
생산은 어렵고, 가격은 비싸고, 공급은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얻는 건 명확합니다.
폭발적인 성능, 빠른 응답, 낮은 지연.
AI 모델을 처음 학습시킬 때처럼
모든 게 한꺼번에 밀려오는 상황에서는
이만큼 적합한 구조도 없습니다.

HBM은 성능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입니다.
다른 건 뒤로 미룹니다 — 비용도, 단가도, 생산성도.

GDDR —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실용주의

반면 GDDR은 극단적이지 않습니다.
HBM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생산이 쉽고, 가격이 낮고, 공급도 안정적이고,
전력과 구조도 균형 잡혀 있습니다.

이 메모리가 선택받는 순간은 명확합니다.

이미 학습이 끝난 AI 모델을
수만·수십만 사용자에게 서비스해야 할 때.
즉, 추론(inference)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폭발적인 성능”보다
“지속적인 효율”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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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세


데이터센터 운영비


공급 안정성


장비 가격


유지보수


이 모든 현실적인 요소를 포함해
총 비용(TCO) 이 승부를 가릅니다.

지금 AI는 점점 이 영역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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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구조적 차이

— 고층 빌딩과 단독주택 단지

두 메모리는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HBM은 고층 빌딩.
좁은 땅에 위로 높게 올라가고,
엘리베이터(TSV)로 데이터가 초고속 이동합니다.
폭발적이지만 설계·시공이 어렵고 비용이 큽니다.

GDDR은 단독주택 단지.
넓게 펼쳐져 각 집이 도로망으로 연결됩니다.
속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확장, 유지, 비용 모두 현실적입니다.

기술의 방향이 서로 다른 이유가
이 구조에서 이미 드러납니다.

성능의 시대에서 ‘적합성의 시대’로

예전에는 최고의 스펙이 정답이었습니다.
“더 빠른 것이 더 좋은 것.”
그게 기술의 미덕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장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데이터센터 운영자, AI 스타트업, 기업들은
이제 스펙보다 운영비 전체(TCO)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칩 가격


수급 안정성


전력 효율


유지비


시스템 구성 난이도


기술이 아닌 ‘비즈니스’가 기준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엔비디아의 Rubin CPX 같은 신형 칩들이
GDDR7을 택하는 흐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건 단순히 기술 변화가 아니라
AI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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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최고보다, 맞는 것

강함보다, 효율

극단보다, 균형

HBM과 GDDR을 보면서 느끼는 건 단순합니다.

세상은 “최고의 기술”을 찾는 시대에서
“가장 적합한 기술”을 선택하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HBM은 고급의 정점이고,
GDDR은 효율의 정점입니다.

둘 중 하나가 옳거나 그르지 않습니다.
그냥 목적이 다르고, 철학이 다릅니다.

그리고 지금 AI의 미래는
이 두 방향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을 찾아 나누며
더 넓은 생태계를 만드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기술은 점점 ‘정답’이 아니라
‘선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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