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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샵의 좌초, 그리고 사진가의 새로운 선택 도구

포토샵

by 마루

포토샵의 좌초, 그리고 사진가의 새로운 선택

도구가 아닌 시선으로, 속도가 아닌 감정으로

나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다.

빛을 재고, 순간을 기다리고, 셔터를 누른다.

그러나 작업이 끝난 뒤의 풍경은 불과 몇 달 전과 전혀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보정의 세계는 의심할 여지 없이 포토샵의 영역이었다.

트리밍, 색보정, 디테일 수정,

그리고 때로는 꽤 무거운 합성과 연출까지.


포토샵은 내 작업의 중심이었고,

이미지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절대적인 공간이었다.

월 8만 원, 10만 원에 가까운 구독료를 내는 일도

전문 사진가라면 감내해야 할 통과의례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고백하듯 말할 수 있다.

포토샵은 더 이상 메인이 아니다.


요즘 내가 포토샵을 여는 이유는

간단한 트리밍이나 확대,

조금의 미세 보정처럼 아주 조그만 작업일 뿐이다.


진짜 큰 작업은

이미 AI가 맡고 있다.


캔바, 나노바나나 같은 도구 안에서

프롬프트 몇 줄, 이미지 몇 장만으로

전체적인 메인 스튜디오의 분위기와 구조가 설계된다.


옛날처럼 복잡한 프레임을 만들고,

까다로운 프로포션을 맞추며

수십 개의 레이어 위에 시간을 쌓지 않는다.


그 대신 나는 문장으로 작업한다.


그 문장은

레이아웃을 지배하고,

공간을 구성하며,

이미지의 방향까지 정해버린다.


이 모든 변화가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가끔은 낯설 정도다.


나는 문득 생각하게 된다.

이 거대한 플랫폼의 가격이

학생 할인 50%를 거쳐

이제는 만 원 이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만 원을 주고도

과연 계속 사용하게 될까.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점점 강해진다.


포토샵이 제공하던 ‘절대성’은 이미 무너졌고

그 거대한 플랫폼은 조용히 좌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나는 몰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시대가 바뀌었을 뿐이다.


과거의 사진가는

도구의 숙련도로 자신을 증명했다면,

지금의 사진가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로 평가받는다.


나는 더 이상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가 담아야 할 감정을 고민하고,

사진이 머무를 온도를 조율하며,

이야기의 방향을 설계한다.


큰 구조는 AI가 만들고,

나는 그 위에 감각을 얹는다.


이 역할 분담은

두려움이 아니라

해방에 가깝다.


포토샵의 좌초는

사진가의 몰락이 아니라

사진가의 진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훨씬 가벼워진 손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다.


도구가 아닌 시선으로.

속도가 아닌 감정으로.


우리는 이미

새로운 창작의 시대에 들어섰다.


작가의 말


이 글은 포토샵을 비난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수년간 내 작업을 지탱해준 도구에 대한 단절이 아니라,

시대가 어떻게 나의 작업 방식을 바꾸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여전히 포토샵을 존중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을 중심으로 두지 않는다.


기술의 변화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보다

나는 이 흐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상을 더 빠르게, 더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은

도구가 변해도

사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에게 다시 확인하기 위한 문장들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빛을 사랑하고,

여전히 셔터를 믿으며,

여전히 사진을 기록한다.


다만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감자공주 (High Orange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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