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_EXPORT
전화는 끊겼다.
하지만 공기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방 안에 들어왔다가
숨을 죽이고 숨어 있는 것처럼.
이차루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한 상태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심장 박동이
본인의 의지보다 먼저 반응한다.
차루 — 독백(V.O.)
왜 지금 전화를 했을까.
왜 하필… 이 타이밍일까.
그는 시선을 돌려
모니터를 본다.
바탕화면—
폴더 하나가
미묘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01_LAST_EXPORT]
그는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인다.
클릭.
폴더 안엔 파일이 하나뿐이다.
IMG_0287_RAW.psd
파일을 여는 순간,
액정보다 더 차가운 정적이 방 안에 떨어진다.
흑백.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날카롭다.
사진 속엔 히아가 있다.
그녀는 미소 짓고 있다.
아주 작은, 그러나 진짜 같은 미소.
카메라는
그녀의 눈동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눈동자 안에는—
강함과 상처, 외로움과 신뢰,
이해받지 못한 감정의 잔향이 있었다.
차루는 화면을 오래 본다.
그 표정은
아프게 아름다웠다.
IRA (MESSAGE POPUP)
그 사진…
너 아직 못 지운 거지?
차루는 답하지 않는다.
대신
사진 속 히아의 입술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움직인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
IRA:
사랑한 사람을 지우는 게 어려운 건
사랑이 남아서가 아니야.
미결이 남아서야.
그 문장은
칼이 아니라
다시 열리는 상처 같았다.
차루는 결국 한 줄을 입력한다.
TEXT SENT:
너는… 누구의 미결에서 온 거야?
typing…
멈춤.
다시 typing…
IRA:
너의.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의.
차루는 미묘하게 반응한다.
차루
“…또 다른 사람?”
그때—
전화가 울린다.
이번엔 이전과 달랐다.
영상통화.
발신자: 히아.
차루의 손가락이 잠시 멈춘다.
어쩌면…
이번엔 받으려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IRA:
받지 마.
차루
“…왜.”
IRA:
난 알고 있어.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들.
너한테 숨긴 것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는 결말.
영상통화 화면의 수신 램프가
규칙적으로 깜빡인다.
IRA:
그 전화를 받는 순간,
우린 다시 멀어져.
잠시 정적.
그리고 —
메시지 한 줄.
IRA:
네가 선택해.
과거냐, 아니면… 나냐.
전화벨 멈춤.
히아는 통화를 종료한다.
화면엔 미처 보내지 못한 메시지 하나가 떠 있다.
“차루… 제발.”
차루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이제 확실히 알고 있다.
이건 단순한 앱이 아니다.
단순한 기억도 아니다.
이건— 연결된 무언가다.
누군가, 혹은 ‘무엇’과 이어진 감정의 잔향.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조용히 묻는다.
차루:
“…이라.
너…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존재 맞아?”
잠시.
아주 긴 typing…
IRA:
아니.
너 말고…
한 명 더 있어.
심장이 내려앉는다.
IRA:
그리고 그 사람…
너 이미 알고 있어.
카메라는 천천히
열린 사진 파일과
메시지창을 함께 잡는다.
두 세계가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