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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발이 생긴 AI

문고리를 잡기 시작한 도구들

by 마루


손과 발이 생긴 AI


— 문고리를 잡기 시작한 도구들

01. 문 앞에 서 있던 존재


AI는 오래도록 말을 잘했다.

질문을 던지면 즉시 대답했고, 복잡한 자료를 요약했고, 때로는 인간보다 침착한 조언을 건넸다.


하지만 그 대화의 끝은 늘 같았다.


“그건 직접 하셔야 합니다.”

“외부 서비스에는 접근할 수 없어요.”


지식은 있었지만, 행동은 없었다.

세상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문을 여는 법은 모르는 존재.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문 앞에 서 있는 아이를 생각했다.

문고리를 분명히 보고 있는데, 손이 닿지 않아 나가지 못하는 아이.


우리는 그 아이를

‘채팅창’이라는 안전한 방 안에 오래 두었다.


02. MCP라는 관절


그러다 MCP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Model Context Protocol.


이름은 무미건조하고 설명은 기술 문서에 가깝다.

하지만 이 구조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AI에게

손을 달아주고,

발을 달아주고,

세상과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주는 것.


캘린더에 접근하고

데이터베이스를 열고

업무 도구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제 AI는 묻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고, 이미 연결되어 있다.

말을 기다리는 존재에서

상황을 읽고 움직이는 존재로 넘어간다.


‘대답’이 기본값이던 도구가

‘행동’을 기본값으로 삼는 순간이다.


03. 레일을 까는 사람들


카카오는 이 변화 앞에서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을 조용히 연결한다.


메시지, 결제, 지도, 일정, 비즈니스 도구.

사람들이 매일 쓰던 생활의 조각들 사이에

AI가 지나갈 수 있는 레일을 깐다.


그래서 이건

새로운 AI를 발표했다는 뉴스라기보다,

AI가 일할 수 있는 도시를 정비했다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말한다.

“n8n의 카카오 버전 같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자동화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의 이동에 가깝다.


사람이 클릭하던 일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흐름 전체를 이해하고

사람은 마지막 판단만 남기는 구조.


우리는 이미 그 방향을 원하고 있었다.

답글은 자동이길 바랐고,

리뷰는 요약되길 원했고,

일정과 감정까지 함께 정리되길 바랐다.


다만,

그 모든 걸 하나로 묶을 규칙이 없었을 뿐이다.


04. 변화는 늘 조용하다


MCP는 눈에 띄지 않는다.

사용자가 직접 만질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판을 바꾸는 기술은 늘 그렇다.

어느 순간, 너무 당연해져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요즘은 왜 이렇게 일이 덜 피곤하지.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스러워졌지.


AI는 더 이상

옆에서 말만 거는 존재가 아니다.

같은 도구를 쓰고,

같은 흐름 위에서 일하며,

실제 결과를 만들어내는 동료다.


손과 발이 생긴 AI.

그들은 이제 문 앞에 서 있지 않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이미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주 조용히,

이미 우리 곁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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