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나는 오늘, 이순신 장군의 얼굴로 광어회를 먹었다.”
여수 바다의 바람은 늘 약간 짭짤하고, 바다색은 이상하게도 날마다 다르다.
오늘은 푸른색도, 회색도 아닌…
딱 AI가 처음 색을 설정할 때 헷갈릴 법한 색이었다.
무심하게 바다를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피식 웃었다.
“그래. 이제는 그냥 찍는 시대가 아닌 거지.”
예전 같았으면 나는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필터를 얹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손엔 카메라 대신 소라2 프롬프트 창이 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여수 이순신 횟집에서 이순신 장군의 얼굴로 회를 먹는 밈을 만들었다.
모니터 속 나는 갓을 쓰고, 정색한 표정으로 활어회를 들고 있었다.
광어 한 점을 입에 넣으며 아주 진지한 Caption을 붙였다.
“내가 회를 먹으려 하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나라가 맛있는 음식을 두고 허기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짤을 본 사람들은 웃고, 저장하고, 공유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 나는 지금 현실에서도 존재하고,
가상에서도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거구나.”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액션을 준다.
서사를 입힌다.
대사, 캐릭터, 타이틀을 부여한다.
예전 피드가 ‘기록’이었다면,
지금의 프롬프트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나를 콘셉트로 창작한다.”
어떤 날은 용이 되고,
어떤 날은 로마의 검투사가 되고,
어떤 날은 냥코 전사로 변해 문어 괴물과 싸운다.
(문어는 항상 현실보다 훨씬 더 큰 사이즈로 등장한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 얼굴을 컨텐츠 자원으로 쓰는 시대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라2의 리페이크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져서,
이제는 나조차 화면 속 얼굴이 진짜였는지, AI였는지 헷갈릴 정도다.
물론 이런 문화엔 위험도 붙는다.
가상의 연인, 가짜 기억, 잘못된 정체성…
누군가는 이걸 현실보다 더 집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흐름을 보며 한 가지를 느낀다.
“인간은 원래 이야기하는 존재다.”
우리는 늘 신화를 만들었고,
초상화를 남겼고,
사진을 찍었고,
이제는 프롬프트와 밈으로 자기를 기록한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다.
여수의 해풍이 다시 불어왔다.
테이블엔 붉은 초장, 매끈한 회, 김이 올라오는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나는 마지막 한 장을 만들며 속삭였다.
“역사는 기록되는 자의 것이 아니라,
기록을 재밌게 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저장 버튼을 눌렀다.
#하이오렌지필름 #감성스냅
그리고 아주 작은 해시태그 하나를 덧붙였다.
#오늘의나는이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