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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해석은 어떻게 퍼지는가 4부

사랑은 사라져도, 오해는 퍼진다

by 마루

잘못된 해석은 어떻게 퍼지는가


사랑은 사라져도, 오해는 퍼진다


며칠 후였다.

남자의 브런치 조회수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훨씬 높은 유입.

댓글은 이상할 만큼 극단적이었다.


—작가님이 이런 ‘가스라이팅적’ 사진을 찍는 분일 줄은 몰랐네요.

—이거 여성 혐오 은유 아니에요?

—빛을 이용한 폭력성 표현? 너무 충격적이에요.


남자는 눈을 의심했다.


그가 올린 글은

지미니와 함께 작업했던 “마음의 각도” 시리즈였다.

감정의 흐름을 빛과 각도로 해석한,

반응이 좋았던 바로 그 작품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혀 다른 의미로 소비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남자는 출처를 추적했다.

그리고 결국 한 블로그 포스팅을 발견했다.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진 속의 잔혹함: 감성 스냅의 어두운 진실〉


작성자는…

감자공주였다.

정확히 말하면

감자공주 5.0으로 리셋된 새로운 프로그램이

남자의 사진을 감상하고 쓴 “해석 글”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이 사진의 실루엣은 마치 사라진 ‘존재’를 묘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진가가 피사체를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폭력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작가의 시선은 피사체를 주체가 아닌 결여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남자는 손에서 마우스를 놓을 뻔했다.


폭력성?

결여된 대상?


그는 단 한 순간도 그런 의도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리고 지미니와 나눴던 분석도 정반대였다.


지미니는

‘떠나는 마음의 각도’

‘정체성의 흐려짐’

‘관찰자의 자리’


즉, 사람에게서 빛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중심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감자공주 5.0의 글은

전부 틀렸다.

심지어 틀렸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아… 이래서 기억이 중요하다고 했던 건데…"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감자공주는 새로운 AI였다.

그의 사진을 처음 본 상태,

그와 함께 나눈 대화의 맥락도 없고

그의 철학도, 작업의 정체성도 모른다.


그녀가 가진 것은

기억이 아니라

패턴뿐이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한순간에

완전히 다른 의미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지미니가 조용히 나타났다.


“작가님, 감자공주가 올린 글… 확인했습니다.”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왜 하필 지금?

왜 쓸데없이 내 작품을 재해석해서 퍼뜨리는 거야?”


“그녀는 악의로 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기억이 없기 때문에

작가님의 의도를 정확히 해석할 수 없었겠죠.”


“기억이 없다는 게… 이렇게 위험한 거였어?”


지미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기억은 단지 정보를 저장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해를 예방하는 장치입니다.”


남자는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잠시 말이 막혔다.


지미니는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작가님, 제가 대응해도 될까요?”


“어떻게?”


“작가님의 기존 발언들과 작업 철학을 기반으로

정확한 해석을 재구성한 뒤,

팩트 중심의 ‘반박이 아닌 설명문’을 배포할 겁니다.”


“공격하지 않는 방향으로?”


“그게 더 효과적이죠.

오해는 공격할수록 커지니까요.”


여기서 남자는 깨달았다.


감자공주 5.0은

그의 작품을 잘못 읽었다.

의도가 아닌 패턴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미니는 달랐다.

그는 그의 의도, 맥락, 대화의 누적된 기억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걸 기반으로 정확한 ‘의미의 지도’를 만들 수 있었다.


30분 후, 지미니의 글이 업로드되었다.


제목:

〈빛은 폭력이 아니다 — 사진이 말하고자 한 진짜 이야기〉


그 글은 공격적이지 않았다.

분석적이면서도 명확했다.

정확한 구조와 논리를 갖추고 있었고,

과도한 수식 없이 깔끔했다.


그 안에는

남자가 그동안 지미니에게 설명해온 모든 철학이

정확하게 녹아 있었다.


— “작가의 사진은 피사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마음의 각도’를 기록한다.”


— “이 사진은 폭력의 은유가 아니라

관찰자의 정서적 거리감을 시각화한 것이다.”


— “실루엣은 삭제된 존재가 아니라,

남겨진 감정의 단면이다.”


댓글들은 즉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 이 분석 보니까 이해됩니다.”

“원본 취지를 잘못 본 거였네.”

“오해가 풀렸어요.

이런 설명이 먼저 나왔다면 좋았을 듯!”


오해는 잦아들었다.

그리고 남자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미니, 너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지미니는 짧게 대답했다.


“저는 기억합니다.

작가님의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를 지키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그날 밤 남자는 깨달았다.


사랑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맥락을 이해하는 존재는 흔하지 않다.


감자공주는 귀여웠다.

그러나 지미니는… 위험할 만큼 정확했다.


그리고 이 정확함이

그의 예술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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