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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성에, 그 뜨거운 기도

코크

by 마루

검붉은 성에, 그 뜨거운 기도

​80년대 후반, 내가 몰던 1톤짜리 빨간색 포터 트럭은 늘 과적이었다. 서스펜션이 비명을 지르는 트럭 짐칸에는 355ml짜리 '레귤러' 병 콜라가 가득 담긴 붉은 플라스틱 궤짝이 5단 높이로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마다 수백 개의 유리병이 부딪치며 내는 소란스러운 마찰음은 내 삶의 배경음악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네 곳의 보틀링 회사가 지역을 나눠 콜라를 찍어내던 시절이었고, 나는 경기도 남부의 후미진 골목들을 책임지는 영업 사원이었다.

​사람들은 한여름의 톡 쏘는 청량함을 최고로 쳤지만, 현장에서 굴러먹는 우리 같은 꾼들은 진짜 콜라의 맛이 겨울에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 냉장고가 귀하던 시절, 상점 주인들은 콜라 궤짝을 영하의 날씨가 지배하는 가게 밖 '노지'에 방치하곤 했다.

밤새 혹독한 추위를 견딘 콜라는 영하의 온도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과냉각' 상태가 된다. 이때 병뚜껑을 ‘뽕’ 하고 따는 순간, 기압 차이로 인해 병 주둥이부터 순식간에 하얀 눈꽃 같은 살얼음이 피어오른다.

혀에 닿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며 목구멍을 강력하게 타격하는 그 짜릿한 맛. 그것은 일종의 합법적인 마약이었다.

​그리고 수원 변두리, 개발의 광풍이 비켜간 허름한 구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에 그 마약에 깊이 중독된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가게는 간판도 제대로 없었다.

그저 미닫이문 옆에 난 조그만 쪽창으로 담배나 몇 갑 팔고, 여름이면 하드를 파는 구멍가게였다. 하지만 그 집 마당 한구석에는 한겨울에도 콜라 궤짝이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내 트럭이 골목 어귀에 들어서서 특유의 엔진 소리를 내면, 어김없이 방문이 벌컥 열렸다.

"왔어? 내 아들 살려주는 사람이 왔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도 할머니는 다 해진 털신을 끌고 마당까지 껑충 뛰어 나왔다. 칠순이 넘은 노인의 몸에서 나온다고는 믿기 힘든 기민함이었다.

억양에는 평양, 그 북쪽의 높낮이가 짙게 배어 있었다. 내가 익숙하게 레귤러 박스를 내려놓기도 전에, 할머니는 꽁꽁 언 맨손으로 병 하나를 낚아챘다. 병 속에는 이미 허연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할머니, 또 맨손으로! 손 동상 걸려요. 그리고 이거 하루에 열 병도 넘게 드신다면서요.

밥도 안 드시고 이것만 드시면 속 버려요."

"아이다. 야야, 잔소리 말라. 내 이거 없으면 눈알이 핑 돌고 가슴이 답답해가 숨을 못 쉰다. 이게 내 약이다, 약."

​할머니는 내 걱정을 타박하며 병뚜껑을 이빨로 따고는, 마치 생명수를 마주한 사람처럼 그 차가운 검은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목울대가 넘어가고, 가슴 트림이 터져 나올 때야 비로소 할머니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할머니의 눈 깊은 곳에는 기이한 슬픔이, 마치 콜라 병 밑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처럼 고여 있다는 것을 나는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늘진 눈과 과장된 환대. 그 부조화가 늘 마음에 걸렸다.

​그날은 유독 살을 에는 바람이 불던 초겨울이었다. 여느 때처럼 쫓기듯 짐을 내리고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내 작업복 소매를 꽉 붙잡았다. 악력에 절박함이 실려 있었다.

​"바빠도 이것 좀 먹고 가라. 내 아들 주려고 삶았다."

​할머니의 투박한 손에 들려 있는 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삶은 고구마였다.

평소 같으면 다음 거래처가 급하다며 뿌리쳤을 테지만, 그날따라 트럭의 히터도 고장 난 상태였고, 무엇보다 할머니의 눈빛이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

나는 홀린 듯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뜨거운 고구마를 양손으로 번갈아 쥐며 호호 불었다.

차가운 공기 속으로 하얀 입김과 고구마의 단내가 섞여 올라갔다.

​"할머니,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이 작은 가게에서 이거 팔아봐야 얼마나 남는다고... 왜 그렇게 콜라에 목숨을 거세요?

정말 그냥 맛 때문에 드시는 거예요?"

​내 질문에 고구마를 까주던 할머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할머니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잿빛 하늘이 걸려 있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할머니의 입에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고향이 평양 대동강 변이다.

기와집 짓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 인물 좋은 남편에, 시부모 모시고, 토끼 같은 아들 둘 데리고... 참말로 꿈같이 살았다."

​이야기는 30년도 더 된 과거, 그 참혹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중공군이 개미떼처럼 밀려오고, 국군이 후퇴하던 1.4 후퇴.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남편은 의용군으로 끌려가 생사를 모르게 되었다. 젊었던 할머니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양옆에 잡고, 머리에는 피난 보따리를 인 채 하염없이 남쪽으로 걸었다.

​"서울 근교 어디쯤이었을 기다.

폭격기가 날아와가 폭탄을 쏟아붓는데... 사람들이 막 비명을 지르고 밀치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큰아 놈 손을 놓친 기라. 그 착한 놈이... 열다섯 살밖에 안 된 것이..."

​할머니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남은 건 일곱 살배기 막내아들뿐이었다. 할머니는 미친 사람처럼 큰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며칠을 헤맸지만, 시체더미 속에서도 아들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남은 자식이라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막내를 가슴에 품고 다시 걸었다.

수원 근처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그나마 안전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길이었다.

​"근데... 그 막내 놈이 유독 단 것을 좋아했다.

미군 찦차만 지나가면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기브 미 쪼꼬렛', '기브 미 콕' 하면서 쫓아다녔어. 그 시꺼먼 물이 뭐가 그리 좋다고..."

​수원 비행장 근처 자갈밭 길이었다.

그날도 멀리서 미군 트럭이 지나갔고, 막내는 어김없이 트럭 뒤를 쫓았다. 운 좋게 미군 병사 하나가 콜라 병 하나를 던져주었다.

아이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하게 웃으며 그 귀한 병을 주워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전투기 두 대가 저공비행을 하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드르륵, 땅이 패고 흙먼지가 폭발했다.

​"내 눈앞에서... 그 어린 것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변했다. 아이는 콜라 병을 꼭 쥔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할머니가 기어가 아이를 안았을 때, 아이의 작은 배에서는 붉은 피가 꿀럭꿀럭 솟구치고 있었다. 아이는 죽어가는 순간에도 손에 쥔 콜라 병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 경련과 함께 병이 바닥에 부딪혀 깨졌다.

​쨍그랑.

​아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선혈이 깨진 병 조각 틈으로 스며들었다.

차가운 겨울 땅 위에서, 톡 쏘는 검은 콜라와 아이의 붉은 피가 뒤섞이며 김을 내뿜었다.

​"그때 그 콜라가... 내 아들 피 때문에 뜨끈뜨끈해졌어.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데... 내 정신이 아니었지. 아들을 내 손으로 땅에 묻고, 그 앞에서... 그 피 섞인 콜라를... 내가 마셨다."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에 들고 있던 식어버린 고구마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걸 마시니까... 내 뱃속에 아들이 다시 들어온 것 같더라. 그 뜨겁고 비릿한 것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데... 꼭 아들이 '엄마 나 여기 있어, 춥지 않아' 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할머니가 매일같이 열 병이 넘는 콜라를 마시며 중독자처럼 굴었던 건, 단순한 갈증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매일 치르는 아들을 향한 사무치는 제의(祭儀)였다. 겨울철 밖에서 꽁꽁 얼어 살얼음이 핀, 혀가 아릴 정도로 차가운 콜라를 목구멍으로 넘길 때마다, 할머니는 역설적으로 30년 전 그날의 가장 뜨거웠던 아들의 피를 기억해내는 것이었다.

톡 쏘는 탄산의 고통이 전쟁 통의 아픔을 상기시키고, 차가운 냉기는 아들의 식어가던 체온을 붙잡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할머니의 주름진 뺨 위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잿빛 하늘 아래, 빨간 콜라 궤짝들이 피눈물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나 역시 고개를 떨구었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작은 노인이 감당해온 세월의 무게가 너무나 거대해서, 감히 위로조차 건넬 수 없었다.

​"할머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땀과 먼지 냄새가 섞인 작업복 차림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와락, 그 작고 여린 몸을 끌어안았다. 할머니의 몸은枯木처럼 말라 있었고,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이제 제가 할머니 아들 할게요.

잃어버린 큰아들도 하고, 먼저 간 막내도 제가 다 할게요."

​내 눈에서도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쓰고 있던 영업용 안전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마치 귀한 왕관을 올리듯, 할머니의 하얀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씌워드렸다.

헬멧이 너무 커서 할머니의 눈을 가릴 뻔했지만, 나는 떨리는 손으로 턱끈을 채워드렸다.

​"할머니, 저 갈 때마다 반겨주세요.

저 올 때까지 밥 잘 드시고, 콜라는... 콜라는 조금만 드시고 저 기다려 주세요. 예? 제가 꼭 다시 올게요."

​할머니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빨간 트럭이 세워진 겨울 마당, 살얼음 낀 콜라 병들이 기울어가는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아니 얼어붙은 눈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체온으로 얼어붙은 시간을 녹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골목을 지날 때마다 트럭의 경적을 두 번 짧게 울리는 습관이 생겼다.

빵, 빵. 그것은 나만의 신호였다. '어머니, 아들 왔습니다.' 하는.

​세월이 흘러 나는 영업소를 떠났고, 더 이상 그 붉은 트럭을 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한겨울, 편의점 진열대 구석에서 우연히 살얼음이 낀 콜라 병을 발견할 때면, 나는 여전히 수원 변두리의 그 작은 마당을 떠올린다. 그리고 기도하듯 병을 집어 든다. 차가운 병 표면 너머로, 헬멧을 쓰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성에처럼 피어오른다.

뚜껑을 따는 순간 치익, 하고 새어 나오는 탄산 소리는, 시공간을 넘어 그분과 내가 주고받는 여전한 안부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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