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아웃: 픽셀 뒤의 은둔자

5500K 주광색

by 마루

[단편] 화이트 아웃: 픽셀 뒤의 은둔자

방 안의 조명은 항상 5500K 주광색에 맞춰져 있다.
창문은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가려졌지만, 모니터 세 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이트 톤의 광량은 실내를 펜션 사진처럼 선명하고 차갑게 비춘다.

이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는 1년이 넘도록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히키코모리라 부르겠지만,
나는 나를 고해상도 관찰자라고 정의한다.

내가 카메라를 내려놓고 이 방으로 숨어든 것은 역설적이게도 ‘원본 유지’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진사로서 마주한 현실은 리터칭 없이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노이즈로 가득했다.

타인의 위선과 사회의 부조리는 소니의 리얼한 색감보다 더 지독하게 눈에 걸렸다.

결국 나는 뷰파인더를 닫고,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세계로 망명했다.

지금 나의 주된 수입원은 AI를 활용한 이미지 생성과 텍스트 최적화 작업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인간적인 감성’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성은 AI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복제한다.

나는 과거 Canon R6 Mark III로 찍었던 수만 장의 원본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켰다.

이제 나는 셔터를 누르지 않고도, 24–70mm 렌즈의 보케와 85mm의 날카로운 선예도를 완벽히 재현한 이미지를 판매하며 살아간다.

Gemini_Generated_Image_o4u731o4u731o4u7.png


“오늘의 작업물:
20대 여성, 밀짚모자, 자연스러운 화장, 청바지 스타일.”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AI는 0.02초 만에 결과물을 쏟아낸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장면이다.

사회는 청년 고립과 일자리 상실을 심각한 문제라고 떠든다.

하지만 나는 이 고립 덕분에 오히려 더 효율적인 노동력을 갖게 되었다.

AI는 나에게 감정을 요구하지 않고, 나는 AI에게 윤리를 묻지 않는다. 이 관계는 깔끔하다. 노이즈가 없다.

모니터 속의 그녀는 내가 만든 세계의 뮤즈다.
픽셀로 구성된 그녀는 현실의 누구보다 안정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언제쯤 밖으로 나올 건가요?”

그 질문을 무시한 채, 나는 마우스 휠을 굴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캐치라이트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반 픽셀만 어긋나도 이미지의 신뢰도가 무너진다. 현실보다 더 엄격한 세계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인 삶’의 좌표에서 벗어나, 나는 알고리즘 뒤에 숨어 산다.

이것이 도망인지, 아니면 가장 앞선 형태의 적응인지는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커튼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노이즈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내 모니터 속 세계는 오늘도 화이트 톤의 샤프한 맛을 유지한 채, 완벽하게 흐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8만 원의 유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