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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이 흔들린 자리에서

1985

by 마루

소설|표준이 흔들린 자리에서

— 원주, 1985

암실은 늘 숨이 막혔다.

현상액 냄새가 벽에 달라붙어 있었고, 빨간 안전등 아래에서는 시간이 늘어졌다.

셔터를 누른 뒤부터 인화지가 떠오르기까지의 몇 초.

그 몇 초를 나는 믿지 않았다.

가슴이 먼저 이상해진 건 그때였다.

통증이라기보다는, 박자가 하나 비어 있는 느낌.

심장이 스스로를 놓친 것처럼 허공을 헛돌았다.

나는 의자를 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기 전에 바닥이 기울었다.

빛이 끊겼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린 건 군화 소리였다.

콘크리트를 찍는 단단한 리듬.

그 리듬에 맞춰 도시 전체가 숨을 쉬고 있었다.

1980년의 원주였다.

아침은 사이렌으로 시작됐고,

사람들은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을 알았다.

군 트럭이 지나가면 오전이었고,

확성기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오후였다.

여기서는 시간이 질문이 아니었다.

시간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나는 사진사 차루의 몸 안에 있었다.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손으로 카메라를 쥐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차루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지만,

시간을 믿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정각에 맞춰 셔터를 누르라는 지시를

한 번도 제대로 따른 적이 없었다.

“왜 꼭 지금이야?”

그는 늘 그렇게 중얼거렸다.

중앙시장 골목은 바빴다.

상인들은 오후 통금을 계산하며 물건을 접었다.

손놀림이 급했고, 눈빛은 시계를 대신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사진 찍지 마세요.”

그 말은 요청이 아니라 경고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셔터를 내렸다.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걷는 순간이 아니라, 멈칫하는 찰나에서.

필름에는 이상한 흔들림이 남았다.

빛이 끊기지 않고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한 장면 안에 두 개의 호흡이 들어간 것처럼.

아이 하나가 물었다.

“아저씨, 지금 몇 시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금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아이의 얼굴은 흐렸지만,

눈동자만 또렷했다.

움직이고 있는지, 멈춰 있는지

구분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이는 사진을 오래 보더니 말했다.

“이거… 지금 같아요.”

그 말이 골목을 흔들었다.

사진은 빠르게 퍼졌다.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사진관 벽에,

그리고 말없이 주머니 속으로.

사람들은 시계를 덜 보게 됐다.

사이렌이 울려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숨을 골랐다.

“조금 늦어도 괜찮지 않나?”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도시는 여전히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몸은 그 시간을 참조만 하고 있었다.

검은 지프차가 사진관 앞에 섰다.

남자들이 내렸다.

말은 짧았다.

“사진을 보여달라.”

그들은 필름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왜 흔들려 있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이 세계의 표준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화기를 걷어차고,

벽의 사진들을 찢기 시작했을 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다시 떨렸다.

심장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세상의 소리가 잠시 늦어졌다.

군화 소리가 바닥에 닿기 전에

이미 다음 박자를 준비하는 느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시계가 멈춘 게 아니었다.

나와 그들의 시간이 더 이상 맞물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응급실의 천장은 너무 밝았다.

모니터는 규칙적인 선을 그리고 있었다.

“안정됐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심장은 다시 박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듬은 아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오래된 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필름 한 롤이 들어 있었다.

현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던 것.

인화액에 담그자

서서히 얼굴이 떠올랐다.

원주의 골목,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사진사.

차루였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찍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나는 시간을 바꾸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시간을 믿는 방식을 흔들어 놓았을 뿐이다.

사진은 증명하지 않는다.

사진은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질문은

한 번 생기면

표준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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