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제
2부|잔존 리듬
― 현재
셔터 소리는 같았다.
하지만 울림은 달랐다.
2025년의 원주는 정교했다.
신호등은 정확했고,
버스는 분 단위로 도착했고,
모든 것이 제시간에 맞춰 돌아갔다.
문제는,
내 심장만이 그 시간에 맞지 않았다.
1. 규칙적인 파형, 불규칙한 감각
병원에서 받은 종이는 깨끗했다.
심전도 그래프는 교과서처럼 반듯했다.
의사는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한 스트레스는
내가 아는 단어와 다른 뜻이었다.
밤이 되면
심장은 멀쩡히 뛰고 있었지만
박자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여백이 생겼다.
그 여백에
1980년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기름 탄 냄새,
젖은 아스팔트,
군화 밑창이 콘크리트를 찍는 소리.
2. 사진이 먼저 반응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이유는 없었다.
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주 중앙시장.
지금은 관광지로 정리된 거리.
셔터를 누르는 순간,
뷰파인더가 0.1초 늦게 따라왔다.
기계적 결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컷에서도,
그다음 컷에서도
같은 지연이 반복됐다.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등골이 식었다.
사람들 뒤편,
존재할 수 없는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군용 트럭의 실루엣.
지워진 듯 남아 있는 번호판.
그리고—
한 남자의 뒷모습.
카메라를 든 사진사.
3. 차루는 사라지지 않았다
확대하면 할수록
그는 선명해졌다.
나와 같은 카메라를 들고,
같은 각도로 서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는 나보다 반 박자 느렸다.
움직이기 전에
항상 멈칫했다.
마치
다른 시간대의 공기를
아직 다 들이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1980년은 끝나지 않았다.
그 리듬이,
내 안에 잔존한 채
현재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4. 현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신호가 바뀌기 직전,
사람들의 발이 동시에 멈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두가 같은 순간에 숨을 들이켰다.
지각이 줄었는데,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 시간 감각이 좀 이상하지 않아?”
그 말은 농담처럼 퍼졌지만,
도시의 리듬은 미세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시계는 그대로였고,
사람들만 달라지고 있었다.
5. 기록을 막으려는 자들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가자
연락이 왔다.
“촬영 의도가 뭡니까?”
그들은 기자도, 경찰도 아니었다.
표정에는
오래된 직업의 습관이 남아 있었다.
“이런 사진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이
1980년의 어조와
너무 닮아 있었다.
그들은 사진을 삭제하길 원했다.
원본 파일까지.
나는 묻지 않았다.
왜 지금까지 침묵하다가
이제야 움직이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표준은
흔들릴 때만 스스로를 드러낸다.
6.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그날 밤,
가슴이 다시 조여 왔다.
이번에는 아팠다.
통증보다
익숙함이 먼저 왔다.
심장은
다시 한 박자를 놓쳤고,
나는 의자를 붙잡았다.
눈앞이 어두워지는 대신
도시는 또렷해졌다.
현재의 원주 위에
다른 원주가 겹쳐졌다.
겹치되,
완전히 포개지지는 않았다.
두 개의 리듬.
두 개의 기준.
그리고 그 경계에
서 있는 나.
7. 선택의 예감
차루가
이번엔 사진 속이 아니라
유리창 반사에 서 있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겠다는 뜻이었다.
이 균열은
멈추지 않는다.
과거에서 시작된 리듬은
현재를 통과했고,
다음 박자를 찾고 있었다.
나는 느꼈다.
다음은
미래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표준이
아직 이름조차 갖지 않았다는 것을.
현재는 안전하지 않다.
과거를 견뎌낸 리듬은
반드시 다음 시간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