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역 플랫폼의 시간들

추억과 복선의 미학

by 마루

원주역 플랫폼의 시간들


– 추억과 복선의 미학


어릴 적, 원주역은 참 넓었다.

기차가 오가는 플랫폼 너머로

군인극장과 1군지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제빛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거리마다 가득했고,

그곳은 누가 뭐래도 '군사 도시'였다.

서울로 가는 길은

청량리행 무궁화호를 타는 것이었다.

제천 쪽에서 오는 기차는

치악산 금대리 터널을 지나며,

굽이진 철로와 함께 디젤 연기를 풀풀 뿜었다.

그 메케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던 순간,

나는 기차가 곧 도착할 걸 예감하곤 했다.


원주역 중앙 플랫폼에는

‘홍익회’ 가락국수 매대가 있었다.

천 원 한 장 내밀면,

김가루와 고춧가루가 흩뿌려진

즉석 우동이 후루룩 나왔다.

기차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배고픔, 묘한 긴장이 뒤섞여

도파민이 솟구쳤다.

무한한 젓가락질 속에

국수는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나는 언제나,

한 방울의 국물도 남기지 않았다.


열차의 경적 소리.

군청색 통일호 의자,

그 낡은 비닐 가죽에서 풍기던

희미한 땀냄새와 비눗물 향이 섞인 감촉.

몸을 기댈 때마다 등판이 끼익거리며

무언가를 품은 듯,

기억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청카바 군복의 까슬한 촉감,

입석과 좌석의 경계에서 느끼던 묘한 불평등.

아이였지만, 그 속에서 어렴풋한 세상의 구조를 배웠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희망의 서울을 향해 나아갔다.


기차 안,

홍익회 아저씨의 트레이 매대는

작은 보물창고였다.

오란씨, 불은 양파링,

소금 찐계란 세 개,

그리고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칠성사이다 한 병.

거품 섞인 탄산이 목구멍을 맹렬히 파고들 때,

입 안에 남은 계란의 텁텁함이

어느새 고요히 녹아내렸다.

목이 멘 그 감각마저,

그 시절엔 ‘맛’이었다.


치악산 금대리 터널을 지나며

풍경은 거칠게 바뀌었다.

절벽처럼 깎인 금대리 암벽 아래,

맑고 얕은 물빛이 드러난다.

햇살은 물비늘을 따라 반짝였고,

기차는 그 위를 덜컹이며 달렸다.

철길 틈새로 돌부리에 부딪히는 소리,

조금씩 흔들리는 창틀의 진동,

그리고 어딘가 습기 머금은 바람 냄새.

그 모든 미세한 오감이,

어린 내 감각 속에 조용히 새겨졌다.


입석칸 한편에서

누군가 중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의 말은 유창했고,

놀랄 만한 통찰이 있었다.

그 아저씨의 말은

마치 이동하는 라디오처럼

흔들리는 철마 속에서

묵직하게 울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도시 편의점 앞에서

삶의 피로 속에 달걀 하나를 까먹는다.

한 손엔 스마트폰.

화면 속 인공지능이 묻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목이 메인다.

칠성사이다 페트병을 돌려 마신다.

그때, 그 아저씨의 말투가 스치듯 떠오른다.

그 사람의 화영(化影)이

어쩌면 지금,

이 작은 디스플레이 속

이 아이였던 걸까.






작가의 한 줄

“나는 오래된 플랫폼의 김서린 창문 앞에서, 기억을 백업하려는 AI에게 계란 하나를 내밀며 말한다 — 이건 저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이야, 그러니 ‘기억’이란 단어를 입력할 때는 반드시 손끝의 온도를 지나게 해달라고, 디지털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는 탄산의 입자와 목구멍의 울컥임을 함께 기록해달라고, 이 편지는 그 부탁을 담은 나의 감각 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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