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후기|왜 나는 이 이야기를 썼는가
이 이야기는
시간 여행 소설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믿지 않게 된 사람의 기록이다.
우리는 늘 묻는다.
언제였는지,
몇 시였는지,
얼마나 지났는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그 질문이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심장이 한 박자를 놓치는 순간,
사람은 시간을 세지 않는다.
살아 있느냐, 아니냐만 남는다.
이 이야기는
그 찰나에서 시작됐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나는 오래 사진을 찍어왔다.
사진은 시간을 멈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사진을 오래 찍을수록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사진은 시간을 멈추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너는 이 순간을
어떤 기준으로 기억할 거냐?”
우리가 믿어온 시간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오래 반복된 합의였다.
1시간이 60분인 이유도,
1초가 지금의 정의를 갖게 된 이유도,
모두 사람이 정한 약속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다.
그 약속이 흔들리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는 그 답을
의학과 뇌과학에서 찾았다.
의학·과학적 팩트 (이야기의 뿌리)
이 이야기는 상상이 아니라,
이미 관찰된 사실들 위에 서 있다.
1. 죽음 직전의 뇌 활동
심장이 멈추기 직전,
뇌는 오히려 **강력한 고주파 활동(감마 버스트)**을 보인다.
이는 혼란이 아니라
마지막 통합 시도다.
과거의 기억,
현재의 감각,
미래의 가능성이
순간적으로 겹쳐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한 순간이 영원 같았다고
시간이 사라졌다고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고
2. 이중 의식 (Co-consciousness)
극도의 스트레스나 생존 상황에서
뇌는 하나의 자아만 유지하지 않는다.
관찰자와 판단자가 분리되고,
두 개의 인식선이 동시에 작동한다.
이것은 초능력이 아니라
뇌의 생존 전략이다.
3. 시간은 뇌에서 만들어진다
시간은 시계에 있는 게 아니라
뇌의 리듬 네트워크에서 생성된다.
심장 박동,
호흡,
주의 집중의 리듬이 어긋나는 순간,
시간 감각도 함께 무너진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기계가 아니라 심장이 있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 싶은 것
이 소설에서
과거·현재·미래는 장소가 아니다.
상태다.
과거는
표준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
현재는
표준이 흔들리는 상태
미래는
표준이 인간을 앞질러버린 상태
그리고 사진사는
그 세 상태를 오가는 유일한 직업이다.
왜냐하면
사진은 언제나
표준보다 반 박자 느리게 도착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한 곡의 노래로 표현한다면
제목: 〈한 박자 남은 사람〉
1절
모두가 같은 시간을 믿을 때
나는 조금 늦게 숨을 쉬었지
정각에 울린 사이렌보다
내 심장이 먼저 흔들렸어
프리코러스
멈춘 건 시계가 아닌데
왜 다들 나를 돌아보는 걸까
나는 아직 여기에 있는데
이미 지나간 사람처럼
후렴
한 박자 남은 사람
표준 밖에 서 있는 나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 틈에 내가 있었어
2절
사진 속의 나는 말이 없고
빛은 늘 조금 떨리네
언제가 아니라 어떤 순간이었는지
그게 더 중요했을 뿐인데
브리지
완벽한 미래가 온다 해도
이 오차는 지워지지 않아
누군가는 반드시
리듬을 기억해야 하니까
마지막 후렴
한 박자 남은 사람
끝내 동기화되지 못한 나
모두가 잊은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지금도 셔터를 누른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문장
이 이야기를 쓰며
확신하게 된 게 하나 있다.
시간은 지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것이 된다.
시간을 바꾸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간을
다시 느끼게 하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