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도착하지 않은 말
그녀의 한국말이 막힐 때마다
나는 괜히 컵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단어는 알고 있는데
문장이 오기 전에
감정이 먼저 걸리는 말투였다.
“이거…
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번역기를 켜면
이야기가 작아질 것 같았던 모양이다.
나는 결국
GPT를 켰다.
“천천히 말해도 돼요.”
그 말이
그녀를 안심시켰는지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나는…
한국에
도망처럼 왔어요.”
말은 짧았지만
그 문장은
오래 준비된 문장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자주 옮겨 다녔다고 했다.
나라를, 집을, 언어를.
어디에서도
완전히 환영받지 못했고
어디에서도
완전히 미워받지도 않았다.
“그래서…
항상 중간이었어요.”
중간.
그 단어를 말할 때
그녀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한국에 온 건
선택이기도 했지만
마지막이기도 했다고 했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말은 더 어려웠다.
“시장 가면
아주머니 말
반은 놓쳐요.
그래서 웃어요.”
그 웃음은
사교가 아니라
방어였다.
그녀는
사진 이야기를 꺼낼 때
처음으로 문장이 길어졌다.
“사진은…
말 안 해도 되잖아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틀려도
아무도 바로 고치지 않고,
침묵도
실수 아니고.”
그녀는
처음 카메라를 잡았던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 날,
아무도 묻지 않은 날.
그날 찍은 사진은
엉망이었지만
그녀는
처음으로
‘여기 있어도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사는…
늦어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도착 안 해도
셔터 누를 수 있고,
말 안 해도
보여줄 수 있고.”
그녀의 꿈은
크지 않았다.
유명해지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설명 못 하는 얼굴을
찍고 싶어요.”
그 얼굴을
자신이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말이 느리고
소속이 흐릿하고
항상 중간에 서 있는 얼굴.
“나는
한국말은 아직 어렵지만…
사진은
계속 배우고 싶어요.”
그 말이
그날 그녀가 한
가장 긴 문장이었다.
GPT 화면을 끄고
나는 그녀를 봤다.
어색한 한국말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자기 언어를
찾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만남은
취재도
우연도 아니고,
서로가
자기 속도로
도착 중인
두 사람이
잠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것뿐이라는 걸.
경포해변의 파도는
여전히 제 시간대로 부서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그날
조금 늦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