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의 맛

꼬막

by 마루

​틈의 맛

​얼굴은 종이와 같아서, 한 번 접힌 자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그가 웃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그의 미간 근처에서 아주 미세하게 겹쳐지는 주름을 보았다. 오래전 잘못 접어 두었던 도면을 다시 펼칠 때 나타나는 완강한 선이었다. 환대도 거절도 아닌 그 선 위로 말들이 얹혔다.

​“애매한 시간이네요.”

​그 말은 공중에 머물지 못하고 발치로 떨어졌다. 배가 고팠지만, 지금 이 공기 속에서 ‘배고프다’는 말은 너무 노골적인 생존의 언어 같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나는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져온 종이컵은 가벼웠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인스턴트 커피 향은 얕았다. 뜨거운 온기가 손바닥에 닿자마자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근육의 떨림이라기보다, 우리를 둘러싼 이 상황 자체가 내는 진동 같았다.

​한 모금 머금었을 때, 혀에 닿는 맛은 둥글지 않았다. 예전에 좋아하던 커피의 그 도톰한 단맛 대신, 건조하고 평평한 쓴맛이 먼저 혀를 눌렀다. 삼키고 나서야 입안에 남는 여운을 통해 조용히 깨달았다. 이것은 환대의 맛이 아니었다.

​AI의 미래, 새로 시작할 일들, 가능성에 대한 문장들이 탁자 위를 오갔다. 하지만 그 말들은 마치 귤 하나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끊임없이 옮겨 쥐는 동작처럼 보였다. 어느 한 곳에 놓이지 못하고, 누구의 손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소리 내지 못한 질문은 목구멍 안쪽에서 더 오래 고여 있었다. 그는 순천에 왔으니 밥은 먹어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혼자가 되기 위해 골목 안쪽으로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낙원회관.’

​낡은 간판 아래 자리를 잡았다. 1인분이라기엔 조금 과한 가격표가 붙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 비싼 값이 오늘 혼자 먹는 한 끼의 무게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상 위로 꼬막이 올랐다.

잘 삶아진 생꼬막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가위 끝으로 꼬막 뒷부분의 틈을 툭, 건드렸다.

​딱—

​딱딱한 껍질이 열리는 그 날카로운 소리. 그 틈 사이로 아까 보았던 그의 접힌 눈빛과, 애매했던 시간들, 그리고 식어버린 커피의 씁쓸한 향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알맹이를 입에 넣자 서걱거리는 모래가 씹혔다. 그것은 바다의 흔적이라기보다 오늘 하루가 남긴 찌꺼기 같았다. 나는 그것을 뱉어내지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씹었다.

​이 맛에 억지로 의미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정리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날도 있다는 것을, 씁쓸하고 서걱거리는 이 감각을 혀끝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며 삼켰을 뿐이다.


수노 노래


https://suno.com/s/YALQ55FZczF5dP36


​ 곡 제목: 이상감정식 (Anomalous Meal)

​[Mood: Melancholic, Cinematic, Minimalist]

[Style: Acoustic Guitar or Lonely Piano, Male/Female Vocal with a slight rasp]

​(Intro)


​[Verse 1]

오래 접어두었던 종이를 펴듯

방금 웃던 당신의 얼굴이 미세하게 접힌다

환대도 아니고 거절도 아닌 그 틈새에

“애매한 시간이네요”라는 말이 놓인다

배는 고픈데 배고프다 말할 수 없는

우리 사이의 거리감만큼 커피는 식어간다

​[Chorus]

손에 쥔 종이컵이 떨린다

컵이 아니라 이 상황이 떨리는 거겠지

예전에 알던 그 둥근 단맛은 없고

평평하고 쓸쓸한 인스턴트 향만 혀를 누른다

아, 이건 환대의 맛이 아니구나

삼키고 나서야 조용히 알아차린다

​[Verse 2]

AI 이야기, 미래와 일의 가능성들

말들은 귤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듯

어딘가에 놓이지 못한 채 계속 이동한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소리 없는 질문은

말들보다 더 오래 공기 중에 남아서

정착하지 못한 채 발밑을 맴돈다

​[Bridge]

골목 안쪽으로 더 깊숙이

낙원회관, 혼자 앉은 꼬막집

비싼 가격이 차라리 마음을 편하게 해

생꼬막 뒷부분을 가위로 툭, 누르면

딱— 하고 열리는 그 날카로운 비명

​[Chorus 2]

그 틈으로 아까의 눈빛이 쏟아진다

애매한 시간과 씁쓸한 커피 향이 함께 씹힌다

입안에 남은 모래알은 서걱거리고

이건 바다의 맛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맛

나는 뱉지 않고 천천히 씹어 삼킨다

​[Outro]

의미를 붙이지 말자

정리하려 애쓰지도 말자

그저 이런 날도 있다는 걸

입안에서 한 번 더 확인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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