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남해 길 가다, 동상뒤 한자 두 편
— 한자의 뜻을 기리다
남해의 길은 걷다 보면 자주 멈추게 된다.
바다가 보여서도 아니고, 풍경이 갑자기 바뀌어서도 아니다. 이유 없이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발걸음보다 시선이 먼저 멈추는 자리. 그곳에 동상이 서 있었다.
금속 기둥 두 개.
날이 선 듯 매끈하고,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 있다. 사람의 형상도, 표정도 없다. 대신 한자가 새겨져 있다. 처음엔 읽히지 않는다. 읽으려는 순간보다, 먼저 느껴진다. 차갑고 무겁고, 쉽게 말을 걸지 않는 분위기.
왼쪽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세 자 길이의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그 기개에 흔들려 빛을 바꾼다.
맹세다.
이 문장은 시작이 아니다. 이미 마음속에서 수없이 반복한 결심을, 단 한 번 입 밖으로 꺼낸 순간에 가깝다. 그래서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하다. 하늘에 맹세했다는 말 속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뜻이 숨어 있다.
오른쪽 기둥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는 이어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두르자 모두 쓸려 나가고
산과 강은 피로 물들었다.
이 문장은 결과다.
그리고 이 결과는 자랑이 아니다. 승리의 선언도 아니다. ‘혈염산하’라는 말은 너무 무겁다. 이 문장을 읽고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남는 건 책임이다. 한 번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는지에 대한 묵직한 침묵.
두 문장을 함께 읽고 나서야 이 동상이 왜 두 편인지 이해하게 된다.
맹세만으로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결과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결단과 대가는 반드시 한 쌍이라는 사실. 그래서 기둥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요즘은 선택이 가볍다.
버튼 하나, 터치 한 번, 스크롤 몇 번. 되돌릴 수 있는 선택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한자는 되돌림을 허락하지 않는 언어다. ‘한 번 휘두른다’는 말은, 다시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동상이었지만,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사진을 찍기엔 설명이 부족했고, 그냥 지나치기엔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잠시 서서 읽었다. 소리 내어 읽지 않아도, 문장은 충분히 크게 울렸다.
이 동상은 말한다.
결단은 언제나 대가를 동반한다고.
그리고 그 대가를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 때만, 맹세라는 말을 입에 올리라고.
남해의 바다는 그 옆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파도는 늘 하던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금속 기둥에 새겨진 한자는 시간을 건너 지금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길을 가다 만난 동상 두 편.
그 앞을 지나온 나는, 그날 이후로 ‘한 번의 선택’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볍게 쓰기엔, 너무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