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남는 곳 남해군

카메라

by 마루

이름이 남는 곳 남해

벽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햇빛이 정면으로 들어오는데도, 콘크리트는 온기를 오래 붙잡지 않았다.

그 위에 이름들이 있었다.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읽을 수 없을 만큼.

6·25·월남전 기증자 명예의 전당.

이름은 작았다.

대신 반복되었다.

수백 개, 수천 개의 작은 판이 같은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누군가의 전쟁이 끝난 자리에, 누군가의 이름만 남아 있었다.

나는 유리 진열장 앞에 멈췄다.

카메라 하나가 놓여 있었다.

황동 바디, 낡은 가죽 케이스, 그리고 렌즈 캡에 찍힌 문장 없는 문장.

독수리와 원 안의 표식.

이 카메라는 한 번도 스스로를 설명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 카메라는 이미 너무 많은 설명을 봤을 테니까.

옆에는 시계가 있었다.

시간을 정확히 재는 도구였을 텐데,

지금은 멈춘 채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 아래 훈장 하나.

빛을 받으면 반짝이지만, 그 반짝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는다.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젊은 군인들이 모래 위에 서 있고,

포대를 나르고,

웃고 있지 않은 얼굴들이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그 사진 속 카메라는 이 카메라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카메라도 저런 얼굴을 찍었겠구나.

그리고 한 장의 사진.

늙은 남자.

마스크를 목에 걸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설명이 붙어 있었지만,

나는 굳이 읽지 않았다.

이 사람은 이미 설명이 끝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오니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건물 벽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다시 카메라를 떠올렸다.

기억은 사람에게 남고,

기록은 물건에게 남는다.

이 카메라는 세 번의 전쟁을 건넜다.

독일에서 시작해,

베트남의 정글을 지나,

한국의 전시관까지 왔다.

누군가는 총을 들었고,

누군가는 필름을 넣었다.

누군가는 이름으로 남았고,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지금 이 카메라는

아무것도 찍지 않는다.

셔터도 눌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잠깐씩 말을 잃는다.

아마 그게 이 카메라의 마지막 임무일 것이다.

더 이상 기록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만드는 일.

나는 다시 이름들의 벽 앞에 섰다.

읽지 못한 이름들이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이름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이곳에는

총도 없고,

포성도 없고,

비명도 없지만,

가끔

아주 조용한 소리가 난다.

누군가의 셔터가

마음속에서

천천히 닫히는 소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