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귀근(落葉歸根): 무게가 남긴 잠재적 각인

by 마루

[낙엽귀근(落葉歸根): 무게가 남긴 잠재적 각인]


우리는 흔히 약속을 ‘지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약속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짊어지는 것이다.

죽은 동료의 몸을 등에 업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타인의 시체가 아니다.

아직 매장되지 못한 채 내 등에 달라붙은 나의 **업(業)**이며,

내 삶에서 가장 무거운 디테일이 된다.

1. 시각이 아닌 촉각의 영화

카메라는 길 위의 풍경을 비추지만,

관객의 감각은 끝내 주인공의 등에 머문다.

시체는 시간이 갈수록 딱딱해지고, 부패하며,

마침내 흙의 무게를 닮아간다.

여기서 통증은 도덕적 자부심이 아니다.

그것은 뼈를 파고드는 물리적 압박이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잠재적 각인이다.

우리는 눈으로 본 것은 쉽게 잊는다.

하지만 등에 새겨진 무게는 잊지 못한다.

시체를 내려놓은 뒤에도 그의 허리는 굽어 있을 것이다.

그 굽은 허리야말로 이 영화가 인화지에 남긴

가장 선명한 **상(像)**이다.

2. 소음이 사라진 길 위의 무언수행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건다.

비난하고, 동정하고, 경계한다.

이 모든 것은 외부의 노이즈다.

주인공은 그 노이즈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내 등에 업힌 존재와 나 사이의

지극히 내밀한 거리뿐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숨을 헐떡인다.

이 비대칭의 대화 속에서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업고 걷고 있는가.”

그 대답은 언어가 아니라

땀방울과 흙먼지가 섞인

거친 호흡 속에 있다.

3. 매장이 아니라 해방에 대하여

마지막 순간, 시체를 땅에 묻는 행위는

죽은 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그것은 비로소 자신의 등을 비우는 선택이며,

오랫동안 자신을 짓눌러온

시간의 족쇄로부터 벗어나는 의식이다.

그러나 흙을 덮는다고 모든 것이 끝날까.

원주역의 찐계란 냄새처럼,

한 번 각인된 무게의 감각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시체는 사라졌지만,

그의 등에는 여전히

차갑고 묵직한 부재(不在)의 무게가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등에 업힌 그 ‘시체’는 누구인가.

끝내 버리지 못하고

고향까지 데려가야만 하는

그 지독한 각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체를 업고

각자의 고향으로 걸어가는

고독한 수행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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