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거리에서

한시

by 마루

淨流如鏡靜而無說靜而不聞


“맑은 흐름은 거울 같아, 고요하여 말이 없고 고요하여 들리지 않는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풀면


유리창에 걸린 한시는 늘 거리보다 한 박자 느린 시간을 산다.

사람들은 간판을 보고 지나가고, 전화번호를 보고 목적지를 확인하지만, 그 옆에 조용히 걸린 글은 아무도 부르지 않는다. 다만 보일 뿐이다.

맑은 흐름은 거울 같고, 고요하여 말이 없다는 그 문장.

이 옷가게 앞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어울린다. 결혼 예복이라는 건 결국 가장 큰 소음을 입고 가장 조용한 자리로 가는 옷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말과 축하 속에서도, 당사자에게 남는 건 고요한 각인 하나뿐이다.

유리에는 거리의 반사가 겹친다. 자동차, 사람, 간판, 시간.

그 모든 움직임 위에 한시는 가만히 버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오래 남는 방식으로.

아마 이 글을 걸어둔 사람도 알았을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옷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멈춰 서는 사람이 생긴다는 걸.

그리고 그 한 사람에게는

이 거리, 이 유리, 이 고요가

오래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낙엽귀근(落葉歸根): 무게가 남긴 잠재적 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