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의 100번 : 거울이 삼킨 흉터

월남

by 마루

​〈사각지대의 100번 : 거울이 삼킨 흉터〉

​전시장의 하얀 벽 위에서 거울과 사진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나는 105mm 포탄의 뇌관 위에 세워진 차가운 유리였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손톱에 의해 난도질당한 채 지프차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의 기록이었다.

​나는 먼저 사진을 보았다. 지프차 범퍼에 선명하게 박힌 숫자 '100'.

그리고 그 위를 무심하게 가로지르는 하얀 흉터들. 사진을 인화한 직후의 실수일까, 아니면 이 사진을 간직하던 누군가가 차마 마주하기 힘든 기억을 지우려 했던 흔적일까.

​고개를 돌려 옆에 놓인 거울을 보았다.

군용 트럭의 사이드미러였던 그것은, 본래 운전자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비추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나는 그 거울 속에 내 얼굴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것은 하얀 벽의 전시장도, 내 무미건조한 표정도 아니었다.

거울의 구석, 은박이 살짝 벗겨진 틈새로 사진 속의 그 지프차가 천천히 후진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100번... 채웠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는 환청처럼 낮았다.

거울 속 지프차 범퍼의 '100'이라는 숫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서가 아니었다. 그가 이 전쟁터에서 차마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못했던, 사이드미러로만 훔쳐봐야 했던 사고의 횟수였다.

​사진 속의 그 날카로운 스크래치들이 거울 유리 표면 위로 그대로 옮겨왔다.

지익, 지익. 유리가 스스로 찢어지는 소리가 전시장의 정적을 깼다. 사진을 난도질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 갇혀 있던 그날의 파편들이, 60년의 시간을 뚫고 밖으로 나오려 발버둥 치며 유리를 안쪽에서 긁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진 속의 남자가 사진에서 걸어 나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웃통을 벗은 채, 포탄 뇌관으로 만든 거울 받침대를 가만히 잡았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거울은 뒤를 보라고 있는 게 아니야. 잊지 말라고 있는 거지."

​눈을 깜빡인 순간, 남자는 사라졌다.

하지만 거울 속에는 여전히 지프차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을 비껴갔던 날카로운 흉터 하나가 이제는 내 얼굴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거울은 이제 나를 비추지 않는다.

내가 외면해온 사각지대, 그 백 번째의 기억만을 선명하게 박제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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