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50원의 전자음
원주 장계동, 롯데리아 사거리.
한국관 보도변 쪽에 택시들이 줄지어 서는 자리.
예전에는 식당이 있던 곳이다.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간판 색도, 메뉴도 흐릿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자리에 네온이 들어왔다. 식당 냄새 대신 불빛이 먼저 번졌다.
뽑기였다.
집게가 달그락 움직이고, 공이 굴러가고, 버튼을 누르면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 남기는 기계들. 천 원, 오천 원. 금액은 가벼워 보이지만, 반복되면 금세 묵직해진다. 젊은 애들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인형을 노리는 눈빛은 진지했고, 손은 쉬지 않았다. 어떤 애는 열쇠고리를 뽑았고, 어떤 애는 연속으로 꽝이었다.
나는 천 원을 넣었다.
집게가 움직였다.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아까의 네온보다 더 오래된 빛이 떠올랐다. 뽑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리 때문이었을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머릿속에서 갑자기 아주 얇고 날카로운 전자음이 울렸다.
찍— 찍— 찍—
원주 학성동.
일산초등학교 앞. 형제문구점.
그 앞에는 늘 작은 박스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거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자오락기 같은 건 없던 시절이다. 놀이는 몸으로 했다. 박치기, 딱지치기, 종이 떠먹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가끔 최신 오락이라면 뻔데기 장수가 와서 원판을 돌려주던 날이었다. 정확히 맞추면 그만큼을 퍼줬다. 실패해도 웃을 수 있었다.
더 신기했던 건 설탕으로 만든 칼과 총이었다.
50원을 내고 접힌 종이를 뽑으면, 운이 좋으면 커다란 노담배를 만들어줬다. 운이 없으면 밀가루 사탕 하나.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결과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문방구 안에 오락기가 들어왔다.
크지 않았다. 서서 할 수 없었다. 쪼그리고 앉아야 했다. 화면은 작았고, 소리는 컸다.
너구리.
그리고 갤럭시.
동전을 넣는 순간, 세계가 바뀌었다.
50원은 그때 꽤 큰돈이었다. 손에 쥐고 있다가도 한참을 망설였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전자음.
띠리릭—
갤럭시는 쉬운 게임이 아니었다.
한 판을 깨는 데 시간이 걸렸고, 집중이 필요했다. 양쪽에서 쏟아지는 총알들. 화면이 흑백에서 색을 입는 순간, 전자음은 더 날카로워졌다. 찍찍찍찍—
그 소리는 귀가 아니라 몸으로 들어왔다.
한 판을 깼을 때의 감각.
설명하기 어렵다. 환호도 아니고, 승리도 아니었다. 그냥 “해냈다”는 느낌. 쪼그리고 앉아 있던 다리가 저릿해질 즈음, 화면이 다시 어두워지면 현실이 돌아왔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바닥 감촉, 그때의 전자음은 아직도 정확하다.
지금도 PC로 그 게임을 해볼 수 있다.
그래픽은 깨끗하고, 소리는 정제돼 있다. 하지만 그때의 쓰임감은 없다. 50원을 넣던 손의 망설임도, 실패했을 때의 체념도, 성공했을 때의 묘한 침묵도 없다.
다시 장계동.
뽑기 기계 앞.
집게는 또 한 번 허공을 잡는다.
천 원은 사라지고,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허전하지는 않다. 오히려 이미 잃어버린 적이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뽑기를 한다.
인형은 쌓이고, 전자음은 계속된다.
하지만 내가 들은 소리는 그 소리가 아니다.
찍— 찍— 찍—
그건 돈의 소리도, 기계의 소리도 아니다.
50원을 손에 쥐고, 쪼그리고 앉아, 화면을 바라보던 어떤 아이의 시간이다.
그 전자음은 지금도
어디선가
조용히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