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한가운데 놓인 쌀자루
아버지가 휴가를 받았다는 소식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부엌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날짜도 장소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이미 찬장에서 가장 큰 냄비 두 개를 꺼내 놓았다.
하나는 국을 끓일 것, 하나는 밥을 안칠 것.
부엌 한가운데 툭 놓인 쌀자루는 이 집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버지는 낡은 기름버너를 꺼내 닦았다. 불꽃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올라오는 고집불통 버너였지만, 그 푸르스름한 불꽃이 없으면 여행은 성립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쌀을 작은 통에 옮겨 담으며 손등으로 그 양을 가늠했다.
"이 정도면 며칠은 버티겠지." 혼잣말처럼 내뱉는 그 말은 곧 피난 같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휴가는 늘 낮은 목소리의 협상으로 완성되었다.
너무 멀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현실과, 그래도 바다는 봐야 한다는 자식들의 열망 사이에서 아버지는 신문을 접었다 폈다 하며 기차 시간표가 실린 면을 오래도록 문질렀다.
목적지는 강원도 바닷가. 이유는 묻지 않았다. 기차가 그곳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기차는 제천역에서 숨을 골랐다. 부산에서 제천까지, 그 지루하고 긴 이동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여행이었다. 역사(驛舍) 안에는 늘 철(鐵)과 먼지, 그리고 누군가 먹다
남긴 도시락의 쩔은 기름기가 뒤섞인 냄새가 났다.
딱딱하고 몸에 맞지 않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 바닥에서부터 기분 나쁜 진동이 올라왔다.
그 진동은 발목을 타고 배를 지나 가슴까지 치밀어 올랐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무릎 위에 놓인 가방을 열었다.
기름기 밴 신문지에 싸인 통닭과 비닐 속에서 눅눅해진 만두, 그리고 빼빼로 한 통.
빼빼로는 여행용 과자였다.
평소에는 구경도 못 하던 그 가느다란 막대 과자를 하나씩 나눠 들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그 시절 가난한 여행자들이 지켜야 할 엄숙한 예절 같았다.
닭다리를 뜯어 건네는 아버지의 손끝엔 거친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먹어라, 식으면 맛없다." 그 말은 명령이었고, 동시에 우리가 안전한 궤도 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기차는 북쪽으로 몸을 틀었다.
도시는 듬성듬성해지다 사라졌고, 창밖으로는 이름 모를 논과 산들이 겹겹이 이어졌다.
통일대교를 지날 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창밖으로 '국자리(작은 밭)'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닐하우스, 말려놓은 고추, 옥수수대를 묶어 세워둔 풍경들. 땅에 바짝 붙어 사는 그 작물들은 여행객의 시선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강원도 깊숙이 들어서자 풍경의 채도가 바뀌었다.
플랫폼에는 검은 먼지를 뒤집어쓴 광부들이 서 있었다.
씻어도 빠지지 않는 탄가루가 작업복 주름마다 깊게 박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들을 아주 오래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지만, 그 시선 안에는 동질감과 거리감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평생 짊어지고 온 노동의 냄새이기도 했다.
어느 역에서 내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짐을 챙기고 사람들에 떠밀려 내리는 와중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빼빼로 통이었을 수도, 작은 가방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본질이었으니까.
바다는 보았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푸른 물결이 아니다.
기차 안에서 고개를 떨군 채 잠든 아버지의 마른 얼굴이다.
가슴 위에 신문을 덮고, 기차의 진동에 몸을 맡긴 채 가늘게 숨을 쉬던 모습.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휴가란 누군가에게 쉬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억지로 떼어낸 '방어의 시간'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그 먼 길을 와서도 단 한 번 바다에 몸을 담그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휴가를 다녀온 사람이 되었고, 그 기억의 힘으로 다음 계절을 버텼다.
우리는 사실, 부산에서 쌀자루를 챙기던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 중이었던 것이다.
기억의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갔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시간을 건너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고개를 떨군 채 잠든 아버지의 마른 얼굴, 가슴 위에 덮인 신문, 진동에 맞춰 이어지던 가느다란 숨. 그 모습이 내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남았다.
휴가는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다음 계절까지 이어가기 위해, 누군가가 자신의 몫을 조금 더 소모하는 시간이었고, 아버지는 그 역할을 말없이 맡았다.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어도 우리는 모두 휴가를 다녀온 사람이 되었고, 잃어버린 것들 덕분에 오히려 무엇을 지켜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야 분명해진다. 우리는 목적지에서가 아니라, 제천에서 쌀자루를 챙기던 그 순간부터 이미 여행 중이었고, 그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기차는 지금도 휴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