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지안은 모니터 앞에서 손을 멈췄다.
화면에는 오늘 촬영한 사진이 떠 있었다.
집회 현장. 군중. 깃발. 역광에 물든 하늘.
좋은 사진이었다.
구도도, 빛도, 타이밍도.
그런데 이상했다.
이 사진이 내일 어떤 기사에 실릴지를 떠올리는 순간,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안 씨, 오늘 찍은 것 중에 좀 강렬한 거 있어요?
뭔가… 상징적인 거.”
지안은 폴더를 넘겼다.
태양을 등진 채 주먹을 들고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힘이 느껴졌다.
“이건 어때요.”
“오, 이거 좋네요. 일출 느낌 나는데.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가죠.”
지안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일몰이에요.”
“네?”
“서쪽이에요.
해가 지는 방향.”
전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아, 그건 뭐…
독자들이 어떻게 알아요.
느낌이 중요한 거죠.”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그 사진은 기사에 실렸다.
제목은 정말로 **〈새로운 시작〉**이었다.
댓글에는
“희망이 보인다”,
“드디어 변화가 온다”
같은 말들이 달려 있었다.
지안은 화면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해가 지는 걸 보고 있었는데.
일주일 뒤,
지안은 같은 광장을 다시 찾았다.
다른 취재 건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날의 남자가 계속 떠올랐다.
주먹을 쥔 손, 그림자,
끝을 바라보던 눈.
광장 한쪽, 분수대 앞 벤치.
거기 누군가 앉아 있었다.
지안은 걸음을 멈췄다.
그 남자였다.
사진 속 실루엣이 아니라,
형광등도 역광도 없는
오후의 햇살 아래 드러난 실제의 얼굴.
푸석한 피부, 움푹 꺼진 눈가.
남자의 손에는
접힌 신문 한 부가 들려 있었다.
자신의 얼굴이 크게 박힌,
그날의 기사였다.
지안은 벤치 반대편에 앉았다.
카메라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렸다.
남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한참 뒤,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자꾸 물어요.
희망이 보이냐고.”
지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난 그냥…”
남자가 신문을 펼쳤다 접었다.
“그날 너무 지쳐서,
이제 다 끝났나 싶어서
하늘 한번 본 건데.”
남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몸은 무거웠고.
주먹은 그냥…
떨려서 꽉 쥔 건데.”
지안의 손이
카메라 가방 위에서 굳었다.
남자는 일어섰다.
신문을 벤치 위에 두고 갔다.
뒷모습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지안은 그 신문을 바라보았다.
강렬한 대비,
붉게 보정된 하늘,
‘새로운 시작’이라는 굵은 글자.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지 않았다.
그날 밤,
지안은 작업실로 돌아왔다.
모니터를 켜고
‘새로운 시작.jpg’ 파일을 열었다.
커서가 삭제 버튼 위에서 멈췄다.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클릭하지 않았다.
대신
파일 이름을 바꿨다.
‘일몰, 2024년 10월 12일, 서쪽.jpg’
사진은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이 파일은
누군가 열어볼 때,
적어도 한 가지는 말해줄 것이다.
이건
끝을 바라보던 사람의 사진이라고.
지안은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
창밖은 이미 어두웠다.
내일 아침이면 해가 뜰 것이다.
진짜 일출이.
그녀는 카메라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렌즈 캡은 닫힌 채로.
“사진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지안은
파일 이름을 다시 한번 읽었다.
“그래도
제목 정도는
바꿔줄 수 있지.”
방 안은 고요했다.
모니터의 푸른 빛만이
그녀의 얼굴 위로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