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이 삼켜버린 냄새

Next Floor와 더 플랫폼이 음식

by 마루

프레임이 삼켜버린 냄새

— Next Floor와 더 플랫폼이 음식을 다루는 방식

사진을 찍는다는 건 언제나 선택의 문제다.

보여줄 것과 지울 것, 남길 것과 버릴 것을 동시에 결정한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 세상의 감각 대부분은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다. 소리와 온기, 촉감과 냄새. 하지만 역설적으로 좋은 사진은 그 밀려난 감각들을 다시 불러온다.

따뜻한 색온도는 체온을 떠올리게 하고, 맺힌 물방울은 신선한 냄새를 상상하게 만든다.

프레임 밖의 세계가 프레임 안에서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여기, 그 사진의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두 영화가 있다.

음식을 집요하게 찍으면서도, 끝내 냄새를 허락하지 않는 영화들.

<더 플랫폼>이다.

이 두 작품을 보며 나는 이야기보다 먼저 프레임을 읽게 됐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이 영화들에서 음식은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이 제거된 채 남겨진 사물이라는 것을.

차갑게 식은 욕망의 무게 — Next Floor

의 연회장은 과잉이다. 고기와 지방, 접시와 손동작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그 풍경 어디에도 식욕은 머물지 않는다. 사진가의 눈에는 이유가 명확하다. 이 영화는 음식이 냄새로 이어지는 모든 시각적 경로를 끊어버린다.

화이트밸런스는 의도적으로 청색으로 기울어 있다. 붉은 고기는 더 이상 생명력을 가진 살이 아니라, 차갑게 굳은 물질처럼 보인다. 위에서 내리꽂는 탑라이트는 표면의 수분을 말리고, 부드러워야 할 질감을 딱딱한 덩어리로 바꾼다. 이 음식은 먹히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쌓이기 위해 존재한다.

냄새가 사라진 순간, 음식은 쾌락을 잃고 무게를 얻는다.

그 무게는 인물들의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공간 위에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무너지는 것은 식탁이 아니라 바닥이다. 구조적 결함이 아니라, 감각이 제거된 채 축적된 욕망의 하중이 공간을 붕괴시킨다.

이 장면들은 마치 잘못 노출된 사진처럼 느껴진다. 디테일은 선명한데, 온도는 없다. 그 차가움이 이 영화를 잔인하게 만든다.

책임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냄새 — 더 플랫폼

<더 플랫폼>은 구조부터 다르다. 수직으로 쌓인 공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음식. 설정만 보면 냄새가 진동해야 한다. 실제로 관객의 머릿속에서는 썩은 냄새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하지만 프레임은 끝내 그 냄새를 보여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음식과 같은 높이에 머물지 않는다. 늘 한 발짝 물러서서, 누가 얼마나 먹었는지, 무엇이 남았는지를 관찰한다. 관객은 배고픈 몸이 아니라, 구조를 목격하는 눈이 된다. 컷의 리듬 또한 빠르다. 냄새가 상상 속에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음식은 다음 층으로 떨어진다.

이 영화에서 지워진 냄새는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다.

냄새를 맡는 순간, 우리는 그 구조에 완전히 연루된다. 그래서 영화는 후각을 끝까지 봉인한 채 묻는다.

“당신은 이 구조에서 정말 자유로운가.”

보이지 않는 냄새는 위에서 아래로 전해진다. 누군가의 절제 부족이, 타인의 생존 조건이 된다. 이 영화의 음식은 쾌락이 아니라 책임의 기록이다.

결론 — 차가운 프레임이 남기는 잔상

사진가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 두 영화는 후각을 제거함으로써 시각의 윤곽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작품들이다. 감각을 덜어낼수록 의미는 또렷해진다.

는 말한다.

감각이 제거된 과잉은 결국 자기 무게로 무너진다고.

<더 플랫폼>은 말한다.

보이지 않는 선택의 냄새는 반드시 아래로 흐른다고.

가까이서 보고 있는데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프레임.

그 불편함이 바로 이 영화들이 남기는 가장 정확한 감각이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남는다.

이 두 영화는 그 사실을 가장 차갑고,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증명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장면들은 오래 머문다. 악취처럼, 혹은 끝내 이름 붙일 수 없는 잔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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