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몰랐다.
처음엔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폰을 PC에 연결했을 때,
사진은 있었다.
다만 어제까지만.
오늘 찍은 사진은 없었다.
아니, 없는 척을 하고 있었다.
케이블을 뽑았다 꽂고,
포트를 바꾸고,
폴더를 정렬하고,
날짜를 다시 봤다.
시간은 흘렀고
아이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건 알았다.
아이폰 안에서는 분명히 보였으니까.
문제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이런 태도였다.
“여기까지는 볼 수 있어.
하지만 가져갈 수는 없어.”
왜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어디서 막혔는지는
그 어떤 화면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상한 건
하루 전까지만 정상이라는 점이었다.
어제의 나는 신뢰할 수 있고
오늘의 나는 아직 판단되지 않은 사람처럼
사진은 어제까지만 허락됐다.
이쯤 되면
사람은 기계를 의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뭘 잘못 눌렀나?’
‘업글하면서 설정을 망쳤나?’
‘이게 원래 이런 건가?’
기계는 침묵하고
사람만 조급해진다.
결정적인 순간은
아무 생각 없이 전화 앱을 열었을 때였다.
통화를 걸지도 않았다.
그냥 열었다.
그리고 다시 PC를 연결했다.
그 순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늘의 사진 폴더가 생겼다.
지금 막 찍은 사진들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문제는 사진이 아니었고
케이블도 아니었고
PC도 아니었다.
통화가 정지돼 있었던 것이다.
전화가 멈춰 있자
아이폰은 나를
‘완전한 사용자’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사진을 잠갔다.
아무 말 없이.
이게 보안이라면
너무 조용하다.
보안이라면
“지금은 전송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 줄쯤은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폰은
침묵을 선택했다.
사용자를 보호하는 대신
사용자를 시험하는 방식으로.
아이러니한 건 이거다.
통화가 살아나는 순간
모든 게 풀린다.
사진은 다시 흐르고
폴더는 생성되고
시스템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었다.
마치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정상이다.
아까는 아니었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폰을 조금 다르게 본다.
이건
카메라가 아니라
클라우드 단말기이고,
이건
컴퓨터와 연결되는 기기가 아니라
조건부로 허락받는 장치다.
문제는
그 조건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안은
사용자를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사용자를 가르치지 않는 보안은
보호가 아니라 통제다.
그리고 통제는
항상 뒤늦게 화를 낳는다.
오늘 사진을 찾느라
잃어버린 건
파일이 아니라
시간과 신뢰였다.
이제는 안다.
통화가 정지되면
사진도 멈춘다는 걸.
그래서 다음엔
전화부터 확인할 것이다.
하지만 이걸
‘학습’이라고 부르긴 싫다.
이건 그냥
한 번 당해봐야 알게 되는 시스템일 뿐이니까.
그리고 그건,
솔직히 말해
정말 거지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