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찰나의 기록과 영원한 빛: 사진작가가 읽는 시간의 상대성
퇴색하는 인화지: 존재의 지워짐에 대하여
현상된 사진이 햇빛에 노출되어 서서히 빛바랜 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봅니다.
붉은 기가 빠지고 형체가 흐릿해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문득 질문을 던집니다. "사진 속의 이 얼굴이 지워진다면, 이 찰나에 존재했던 사람의 기억도 우주에서 증발하는 것일까?" 이 사유는 곧장 인류가 발견한 가장 거대한 빛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이어집니다.
절대적인 빛의 방어막: 300,000km/s의 함정
우리는 상식적으로 달리는 차 위에서 빛을 쏘면 그 속도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광속 불변의 원칙: 빛의 속도 c는 초당 약 300,000km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관찰자가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든, 멈춰 있든 빛은 항상 같은 속도로 우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우주의 상쇄성: 존재하지 않는 자가 존재에 간섭할 수 없다는 논리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빛이 절대값이라는 사실은, 우주가 인과관계의 혼란을 막기 위해 쳐놓은 일종의 '보안 장치'와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빛보다 빨라져 과거로 간다 해도, 이미 존재를 부정당한 자가 현재의 줄기를 바꾼다는 것은 과학적 정합성 안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두 영화의 모순: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온 시간 여행
사진작가의 눈에 비친 두 영화는 '시간'이라는 피사체를 서로 다른 조리개 값으로 포착합니다.
[백 투 더 퓨처] - 사라지는 사진 속의 얼굴
영화 속 마티가 과거에서 부모님의 만남을 방해하자, 그가 들고 있던 가족사진에서 형체들이 하나둘 지워집니다. 이것은 매우 시각적이고 사진적인 연출입니다.
"존재의 근거가 사라지면, 기록된 프레임에서도 삭제된다."
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보면 이는 거대한 모순입니다. 존재하지 않게 된 마티가 어떻게 과거에 머물며 간섭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영화적 상상력은 '사진적 허용'을 빌려 존재의 위기를 극복합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폐암과 알약, 그리고 수정된 현재
동남아의 신비로운 천장에게 받은 10알의 알약.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친구에게 담배를 끊으라 말하고, 미래의 자신을 폐암으로부터 구원합니다.
간섭의 결과: 과거의 한 점을 바꾸자 현재의 결과값이 통째로 변합니다.
작가의 관점: 이것은 사진의 보정 작업과 같습니다. 원본 데이터(과거)의 노출을 조절해 최종 출력물(현재)을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바꿔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실제 우주라면, 그 간섭조차 이미 예정된 역사의 일부이거나 혹은 평행 우주로 찢어져 나갔을 것입니다.
몽환의 변주곡: 음악이 흔드는 현실의 경계
이 모든 과학적 논쟁과 영화적 모순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결국 '음악'입니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메인 테마가 주는 경쾌한 모험심, 그리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흐르는 서정적인 선율은 관객을 논리의 함정에서 건져내 '감성적 몽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이 음악들은 정통 클래식의 엄격함보다는, 80년대 특유의 신디사이저 사운드나 상업적인 팝의 감수성을 입은 '크리스탈 사운드'를 닮아 있습니다. 투명하고 매끈하며, 현실의 날 선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내는 소리들입니다.
감독은 과학적 정교함 대신, 음악 감독이 설계한 이 몽환적인 화음으로 영화의 빈틈을 메우려 한 것입니다.
과학은 "안 된다"고 말하지만, 음악은 "그럴 수도 있다"고 속삭입니다.
엔딩: 2026년 원주의 어느 오후
지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스피커에서는 두 영화의 주제곡이 묘하게 섞여 흘러나오고 있죠. 화면에는 방금 작업한 웨딩 사진이 띄워져 있습니다.
빛의 속도는 여전히 300,000km/s로 흐르고,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이 사진 속 인물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미세하게 다르게 흐를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몽환적인 배경 음악 속에서만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기분이 듭니다.
사진작가의 손끝에서 지워지고 살아나는 피사체들처럼, 우리네 삶도 어쩌면 누군가 뒤섞어놓은 시간의 음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시 마우스를 잡고, 햇빛에 탈색된 고사진의 색을 복원하듯 지나간 시간의 한 조각을 만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