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에세이 소설] 현상되지 않은 크리스마스의 선율
원주의 겨울은 유난히 정직하다. 하이오렌지필름의 작업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리면, 나는 뷰파인더 너머로 보았던 수많은 찰나를 다시 꺼내어 본다. 평일의 음식 사진은 화려한 색감으로 식욕을 돋우고, 주말의 돌잔치는 따뜻한 오렌지빛으로 사랑을 증명하지만, 혼자 남은 이 시간 내 손에 들린 것은 보이지 않는 '소리'의 필름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김영대 평론가의 비보는 마치 초점이 나간 사진처럼 마음을 멍하게 만들었다. 대중음악의 서사를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현상해 내던 그의 목소리.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K-팝의 담론들은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마침표가 되어 공중을 떠돈다.
그의 부재를 곱씹다 보니, 문득 한 남자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영화 <악질경찰> 속, 빗물 섞인 가래 끓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말하던 배우 이선균.
그 영화 속에서 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정의로운 형사가 아니었다. 비겁하고, 우울하며, 밑바닥을 기는 '악질'이었다. 하지만 그 우울한 서사 위로 루시드폴의 **'아직, 있다'**가 흐를 때, 사진가인 나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선명한 고화질의 사진보다, 조금은 거칠고 노이즈가 낀 흑백 사진이 더 진실을 말할 때가 있다는 것을.
평론가는 세상을 음악으로 읽어주었고, 배우는 세상을 온몸으로 버텨내며 연기했다. 그리고 나는 원주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그들이 남긴 파동을 기록한다. 평론가의 죽음이 미스테리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아직 그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선균의 영화 음악이 유독 시리게 다가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영화는 끝났지만, 그의 낮은 저음은 여전히 극장 안을 서성이는 유령처럼 우리 곁에 머문다.
사진은 시간을 멈추지만, 음악은 멈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한다. 오늘 밤, 하이오렌지필름의 암실에는 인화되지 못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나는 셔터를 누르는 대신, 그들이 남긴 선율을 조용히 현상해 본다. 슬픔도 적절한 빛과 온도를 만나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기억의 색으로 정착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