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0.1%의 해안에서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너무 익숙해서, 그래서 더 이상했다.
영상이 끝났다는 뜻이고,
더 볼 게 없다는 뜻이고,
이제 다음으로 넘기라는 신호다.
요즘 세상은 이런 신호들로 움직인다.
요약해 주고, 정리해 주고, 결론을 달아 주고,
마침표를 대신 찍어 준다.
그런데 나는 자꾸 반대 방향으로 생각이 흘렀다.
정말 끝난 걸까?
아니면, 우리가 끝났다고 처리해 버린 걸까?
나는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이런 구분을 가지고 있었다.
0.1%
0.9%
99%
0.1%는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고,
0.9%는 그걸 알아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이며,
99%는 이미 만들어진 결과를 만지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다.
우열도 아니다.
위치다.
바다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는 위치인지,
파도에 휩쓸리는 위치인지,
아니면 해안가에 서 있는 위치인지.
오메가라는 사람
아주 오래전, 한 강의장에 간 적이 있다.
정부에서 초청했다는 강의였고,
유명 대학 출신 연구원들이 온다는 이야기였다.
작은 공간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가슴에는 명찰이 달려 있었고,
표정에는 묘한 기대가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에 강사의 모습을 그려두고 있었다.
정장.
단정한 머리.
권위 있는 얼굴.
그런데 무대에 올라온 사람은 전혀 달랐다.
야구모자.
바람막이 점퍼.
힙합 가수처럼 보이는 젊은 외국인.
공기가 눈에 띄게 식었다.
그는 칠판에 단어 하나를 썼다.
OMEGA WORLD
그리고 말했다.
“세상은 이 오메가 세계로 갈 것입니다.
모든 것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그 안에서 과학이 나오고,
통신이 나오고,
우주도 나오게 될 겁니다.”
지금 들으면 평범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인터넷조차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했고,
몇몇은 웃었고,
곧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나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틀렸다고 판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재미없다고 느꼈다.
이게 중요하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종종 ‘노잼’이라는 말로 처리한다.
그건 판단이 아니라, 회피다.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
옆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일어났다.
그리고 무대로 향했다.
오메가를 만나야겠다고,
지금 얘기해야겠다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몇 달 뒤에 들은 이야기
몇 달 후,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메가를 만났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오메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은 선으로 연결된다.
그 선은 물리적일 수도 있고,
정신적일 수도 있다.”
그 말에 영감을 받은 그 사람은
통신망 사업을 시작했다.
이메일과 관련된 기술을 만들었고,
회사를 키웠고,
결국 큰 외국 기업에 회사를 팔았다.
그는 거대한 자본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 강의장은
실패한 강의가 아니라,
선별된 강의였다는 것을.
대부분은 나갔고,
한 사람만 방향을 들고 나왔다.
0.1%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다
0.1%는 점쟁이가 아니다.
그들은
“5년 뒤 세상은 이렇게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해안가에 서서 파도를 본다.
파도가 크냐 작으냐가 아니라,
주기가 길어지는지 짧아지는지를 본다.
지금 사람들은 AI가 만든 그림을 본다.
AI가 쓴 글을 본다.
AI가 만든 영상에 놀란다.
0.1%는 다른 걸 본다.
“지능이 전기처럼 저렴해지는 세상에서,
인간의 의지는 어떤 위치에 놓일까?”
도구가 아니라,
구조를 본다.
우리는 묻는다.
“AI로 뭘 하면 돈이 될까?”
그들은 묻는다.
“AI가 바꿔놓을 연결의 문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만지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만진다.
이미지.
문장.
영상.
젖어 있다.
파도에 휩쓸린 채로.
하지만 결과는 항상 늦게 도착한다.
이미 구조는 다른 곳에서 완성된 뒤다.
우리는 늘
완성된 세계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착각한다.
“지금이 시작이다.”
사실은
이미 중반이다.
나의 속셈
나는 솔직해지고 싶다.
나는 0.1%가 되어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결과만 소비하는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남들이 만든 플랫폼 안에서
남들이 정한 룰로
남들이 정한 성공 정의를 따라가며
살고 싶지 않다.
적어도 한 번쯤은,
파도가 아니라
바다를 보고 싶다.
해안자가 되기 위한 고독한 연습
해안은 화려하지 않다.
사람도 없다.
시끄럽지도 않다.
그래서 대부분 가지 않는다.
해안으로 가기 위한 연습은 이런 것들이다.
1. 요약본을 덜 본다
요약은 편하다.
하지만 생각 근육은 만들어주지 않는다.
가끔은 지루한 원문을 읽는다.
스스로 요약한다.
그 과정이 해안으로 가는 체력이다.
2. 이해 안 되는 것을 바로 버리지 않는다
“노잼”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
한 번만 더 붙잡아본다.
왜 이게 나를 불편하게 하지?
왜 이게 유행하지?
거기에 선이 있다.
3. 마침표 대신 질문을 둔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이렇게 묻는다.
이 영상이 끝난 뒤,
세상은 무엇이 아주 조금 달라졌을까?
4. 내가 하는 일을 ‘콘텐츠’가 아니라 ‘선’으로 본다
사진은 이미지가 아니라 연결이다.
글은 텍스트가 아니라 연결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선.
시간과 기억을 잇는 선.
나는 지금 어떤 선을 그리고 있는가.
해안은 선택이다
해안은 타고나는 자리가 아니다.
천재만 가는 곳도 아니다.
조금 더 차갑고,
조금 더 외롭고,
조금 더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자리일 뿐이다.
0.1%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파도 놀이를 멈추는 태도.
수평선을 보는 태도.
나는 아직 해안자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이게 왜 내 마음에 걸리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것.
그 질문이 생겼다는 건,
이미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도 완성된 답을 찾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 0.1%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을 들고
조용히 해안 쪽으로 한 발짝 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