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
AI가 안내한 골목에서 나는 신발을 벗고 시간을 마주했다
진주에 온 건 계획이 아니었다.
하룻밤을 버티듯 머문 사우나는 오래된 건물 특유의 냄새를 품고 있었고, 시설은 솔직히 말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늦은 시간, 갈 곳 없는 사람을 받아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공간은 나쁘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이 늘 반듯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그런 밤을 몇 번이나 지나와서 안다.
아침이 되자 허기가 먼저 몸을 흔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포털 검색창에 ‘진주 맛집’을 입력하고, 스크랩 수와 광고 문구 사이를 헤맸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검색 대신 대화를 연다.
“진주에서, 아침에 문 여는 돼지국밥집.”
AI는 한 곳을 말했다.
네이버로 다시 확인해보니 정보는 완벽하지 않았다.
어떤 집은 오픈 시간이 맞지 않았고, 어떤 집은 전화번호조차 없었다.
검색의 균열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추천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완벽한 정보보다, 한 번쯤 믿어보고 싶은 직감이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진주역 앞을 지나쳤다.
기억 속 진주역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근대 건축의 골조를 살린 채 말끔하게 정돈된 지금의 진주역은, 과거를 지우지 않고 현재로 끌어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풍경 위로 내가 사는 도시, 원주역이 겹쳐졌다. 건물은 남았지만 기차가 멈춘 역. 도시는 저마다 과거를 다루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도시는 기억을 살리고, 어떤 도시는 기억을 비워둔다.
사진가의 시선은 그런 차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는 발걸음을 늦추며 그 표정을 마음속에 저장한 채 신안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노란 바탕의 간판. 투박한 돼지 그림. ‘옛날 신안동 돼지국밥’이라는 글자가 그 자리에 오래 있었던 것처럼 서 있었다.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입구에서 나를 멈추게 한 건 문구 하나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
식당에서 신발을 벗는 일은 이제 불편함에 가깝다. 위생, 효율, 속도. 그런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불편함이 공간의 규칙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신발을 벗었다.
양말 신은 발이 마루에 닿는 순간, 공간은 갑자기 공적인 장소에서 누군가의 집처럼 변했다.
“혼자 오셨어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아주머니의 목소리.
“그럼 창가 1인석으로 앉으세요.”
창가에 앉자 오래된 2층 구옥이 보였다.
재개발의 흐름에서 비켜난 집. 다정함이 남아 있는 풍경. 이 동네의 온도가 그대로 창을 통해 들어왔다.
돼지국밥 9천 원.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저렴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생각이 아이러니하다는 것도 동시에 떠올랐다.
휴대폰 배터리는 이미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영상 촬영을 막는 안전 모드 알림이 떠 있었지만, 굳이 충전기를 찾지 않았다.
갤럭시 S20 울트라. 올해 말이면 신제품이 나온다는데, 이 녀석과 언제까지 함께할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 카메라로 남기고 싶었다.
그때 아주머니가 음식을 가져왔다.
정확히 말하면, 가져오지 않았다.
투명한 아크릴판 아래 좁은 틈으로, 뜨거운 뚝배기가 조용히 밀려 들어왔다. 구식 식당의 문법 속에 숨은 작은 신기술. 나는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국밥은 단단했다.
얇게 썬 수육, 진한 국물, 펄펄 끓는 온기. 숨이 살아 있는 겉절이 김치, 잘 익은 깍두기. 알이 고운 가는 새우젓—비싸고, 향이 분명한 종류였다.
테이블 위에는 후추가 없었다.
“아주머니, 후추 좀 주세요.”
짧고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불친절이 아니라, 이 동네의 박자였다.
부추를 넣고 국물을 휘저었다.
후추를 털고, 밥을 말았다. 한 숟갈을 입에 넣자 뜨거움이 먼저 왔고, 곧이어 진한 국물의 목 넘김이 따라왔다.
기름기, 후추의 톡 쏘는 맛, 그리고 묘하게 시원한 끝맛. 다대기를 풀어 넣자 국밥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담백함 위에 야성이 얹혔다. 숟가락질이 멈추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뚝배기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포만감. 무료로 제공되는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예전에 진주 공군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었다.
그 시절의 진주는 지금과 달랐다.
진주역도, 이 골목도. 이 국밥집은 아마 그 무렵 막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무거운 군화를 신고 이 앞을 지나쳤을 것이다. 어쩌면 신발을 벗고, 아무 생각 없이 국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장소는 남아 있었다.
AI의 알고리즘으로 찾아온 식당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신발을 벗고 한 그릇을 비운 아침. 기술이 나를 데려다준 곳은 뜻밖에도, 내가 지나쳐 온 과거였다.
나는 오늘, 진주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