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on Canonet QL17 G-III (캐노넷 QL17 G3)
고등학교 때,
내 가방에는 항상 카메라 하나가 들어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들고 다니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은 체육관으로 가거나 분식집으로 향했지만,
나는 종종 교실에 잠깐 더 남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빛이 책상 위에 떨어지는 순간,
그 장면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 시절의 사진은 빠르지 않았다.
화면을 켜서 결과를 확인할 수도 없었고,
찍고 나서 바로 삭제할 수도 없었다.
셔터를 누른 뒤에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기다림이 좋았다.
필름을 감고,
레버를 당기고,
초점을 맞추고,
숨을 한번 고르고,
셔터를 누른다.
그 짧은 과정이
마치 스스로에게 하는 작은 의식 같았다.
“이 장면은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
당시의 나는
사진을 잘 찍고 싶다기보다는,
세상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친구의 뒷모습,
체육관 바닥에 길게 늘어진 햇빛,
비 오는 날 버스정류장,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 텅 빈 복도.
아무도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는 장면들.
하지만 내 눈에는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왜 좋은지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셔터를 누르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사진은 표현이라기보다
정리에 가까웠다.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을
필름 위에 올려두는 방식.
필름을 현상 맡기고
며칠 뒤 사진을 찾으러 가던 길도 아직 기억난다.
봉투를 뜯기 전에는
늘 조금 긴장했다.
잘 나왔을까.
흔들렸을까.
너무 어둡진 않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사진 자체보다,
그 순간을 내가 ‘봤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면
장면보다 먼저
그때의 공기와 기분이 떠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은 카메라도 써보고,
더 빠른 장비도 써보고,
기능 많은 카메라도 만났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보면
늘 처음으로 돌아간다.
사진이 기술이기 전에
태도였던 시절.
잘 찍으려고 하기보다,
그냥 보고 싶어서 찍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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