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단어의 모순
어떤 단어들은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먼저 도착한다.
말한 사람의 뜻보다,
듣는 사람의 몸이 먼저 반응하는 단어들이다.
그 단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언어가 놓인 장소가 달랐을 뿐이다.
어떤 이름은
글자로 보면 문제없다.
외국어로 보면 세련됐고,
사전적으로도 깨끗하다.
하지만 한국어로 소리 내는 순간,
그 단어는 다른 방으로 미끄러진다.
의도는 ‘차(茶)’였는데,
청자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여기서부터
단어의 모순이 시작된다.
이 모순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검열의 문제도 아니다.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언어가 몸을 먼저 거치는 문화에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다.
우리는 뜻을 읽기 전에
소리를 듣고,
소리를 듣기 전에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래서 어떤 단어는
노이즈를 만든다.
처음엔 웃음이 된다.
그 다음엔 농담이 되고,
곧 밈이 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웃긴 이름과
다시 찾고 싶은 장소는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브랜드는
한 번 불린 이름으로
수없이 반복 호출된다.
주문할 때,
검색할 때,
추천할 때,
아이 옆에서 말할 때.
이때 단어가
계속해서 설명을 요구한다면,
그 이름은
조용한 신뢰를 쌓기 어렵다.
모든 주목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머무는 경험’을 팔아야 하는 공간이라면 더 그렇다.
잠시 웃고 지나가는 이름과
다시 들어가고 싶은 공간 사이에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간극이 있다.
나는 이제
이름이 가진 힘을
좋고 나쁨으로 나누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단어는
오래 불려도 괜찮은가.
다른 사람 앞에서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단어의 진짜 성격이 드러난다.
한 줄로 남기면
문제는 단어가 아니다.
단어가 놓인 문화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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