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음악 공모전 작사 작곡 음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 꿈이 남긴 소리는 아직도 내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나는 그날, 그 음악의 끝에 총성을 울렸다
음악은 존재했다.
시스템은 그것을 듣지 못했다.
며칠 전, 독립기념관에서 주관한 음악 공모전에서 연락이 왔다.
나이 지긋하신 담당자 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그 말끝에서 느껴지는 건 한 가지였다.
“악보는 없나요?”
“MP3만으로는 사용이 어렵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악보는 없습니다.
나는 이 곡을,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며 마지막 총성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창작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쓰시겠다면 드리겠고, 안 쓰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제 개인 공간에 이 곡을 남기면 됩니다.”
그분은 아쉬운 말투였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참여’를 한 것이 아니라,
‘헌정’을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나는 그날, 그 음악의 끝에 총성을 울렸다.
서류로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그날 존재했다.
관공서의 시스템은 여전히 서류와 절차에 익숙하다.
음악을 듣기보다는, 문서를 요구한다.
감정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형식을 확인한다.
그건 나에게 익숙한 좌절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음악을 썼고,
그럼에도 나는 마지막까지 진심을 지켰다.
“나는 상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꿈을 꾸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실의 언어로는 닿지 않는 그 장면을, 오직 꿈이라는 틀로만 불러낼 수밖에 없었으니까.”
다시 ...(연출)
이번엔 다른 목소리였다.
누군가 말을 꺼냈다.
“혹시…
이 곡의 마지막 총성, 실제 총소리를 기반으로 하신 건가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네, 당시 총성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순간을 그대로 떠올리고 싶었으니까요.”
그는 흥분한 듯 대답했다.
“사실 저희 팀에서 내부적으로 회의를 했습니다. 악보가 없더라도, 이건 역사적 기록물로서 가치가 있다고요.
정식 절차는 어렵겠지만, 연구 자료로는 보존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공식 전시가 진행될 때, 혹시라도 이 곡을 따로 소개할 수 있다면…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네. 이건 애초에 제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니까요.”
그러니 이 글은 단순한 실패 기록이 아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 꿈이 남긴 소리는 아직도 내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시스템은 여전히 서류를 요구하지만,
누군가는 그 벽을 넘어 음악을 들었다.
언젠가 이 곡이 조용히 전시실 어딘가에 흐를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나는 그날, 그 총성을 올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총성을 기억했다.”
“그래서, 그 총성의 소리를 이곳에 올린다.
상상이 아니라 꿈이었기에, 그리고 그 꿈이 현실보다 더 선명했기에.”
“그래서 나는 그 총성의 소리를 이곳에 남긴다.
이건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꿈이 내게 들려준, 그날의 마지막 숨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