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얼음을 오른다는 것

매바위인공폭포

by 마루

겨울, 얼음을 오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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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만 가능한 일이 있다.
어느 계절에도 흉내 낼 수 없는 선택.
바로 얼음을 오르는 일이다.

빙벽은 처음부터 사람을 반기지 않는다.
차갑고, 단단하고, 말이 없다.
손을 대는 순간
이건 풍경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겨울의 얼음(氷壁)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마주해야 할 대상이다.

얼음은 정직하다

빙벽 앞에 서면
핑계가 사라진다.

날씨 탓도,
컨디션 탓도
통하지 않는다.

손이 미끄러우면 미끄러운 대로,
힘이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그대로 결과가 남는다.

그래서 얼음등반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가깝다.

얼음은
거짓말을 받아주지 않는다.

두려움이 집중으로 바뀌는 순간

처음엔 무섭다.
발끝이 얼음에 닿고
손끝에 차가움이 파고들 때
몸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려 한다.

하지만 한 번 리듬을 찾으면
생각이 사라진다.

다음 손,
다음 발,
호흡.

빙벽을 오르는 동안
머릿속은 놀랍도록 조용해진다.

겨울의 차가움은
오히려 마음을 선명하게 만든다.

왜 하필 겨울인가

왜 굳이
이렇게 차가운 계절에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일을 할까.

어쩌면 답은 단순하다.

겨울에는
불필요한 것이 모두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나뭇잎도 없고,
소리도 적고,
사람도 줄어든다.

빙벽 앞에 남는 것은
몸과 마음뿐이다.

그래서 겨울의 등반은
운동이 아니라
정리다.

내려오는 길에 남는 것

빙벽을 다 오르고 나면
성취감보다 먼저
이상한 평온이 찾아온다.

“해냈다”보다
“괜찮다”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겨울 얼음등반의 매력은
정상에 있지 않다.

차가운 벽 앞에서도
한 발을 내딛었던
그 순간에 있다.

겨울은 여전히 춥고
빙벽은 여전히 단단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 계절에만 허락된
집중과 침묵,
그리고
조용한 용기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겨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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