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을 찍는데, 내 사진을 못 본다

사진

by 마루

나는 사진을 찍는데, 내 사진을 못 본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 업이다. 하루 종일 렌즈 뒤에 있다.

사람들의 순간을 담고, 빛을 고르고, 프레임을 나누고,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찍은 사진을 잘 못 본다.

못 본다는 게, 기술적인 의미는 아니다. 노출이 맞았는지, 구도가 안정적인지, 그건 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조금 더 오래 보려고 하면 시선이 어딘가에서 멈춘다.

그 지점이 불편하다.

AI로 만든 이미지는 괜찮다. 오히려 좋다.

내가 원하는 장면을 만들 수 있고, 빛도 완벽하고, 실수도 없고,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는 내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있어도, 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편하다.

내가 찍은 사진은 다르다.

사진에는 이상하게 무언가가 비친다.

빛을 고르는 방식, 사람을 배치하는 거리, 프레임 안에 남기는 것과 잘라내는 것.

그 모든 선택이 결국 하나로 모인다.

나.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사진은 내가 보지 못한 나까지 남긴다. 그래서 은막이 없다.

글은 다르다.

글도 나를 드러내지만, 그 사이에는 항상 한 겹이 있다.

문장을 고르고, 순서를 바꾸고, 덜 말할 수 있다.

보여줄 것과 가릴 것을 내가 조율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은 조금 늦게 도착한다.

사진은 그렇지 않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 이미 끝나 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 대신 AI 이미지를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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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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