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4. 어느날 시인이 말했다

숲을 위한 소곡

by 박진희


갈재의 동편으로 솟아오른 산은 이름이 없다. 그 흔한 앞산이나 뒷산이란 이름도 없이 나지막하게 굽어진 산을 시인 김호는 떡갈나무 숲이라 불렀다. 그는 숲의 입새에 집을 지어 살고 있어서 산의 품에 안긴 일상을 매일 느끼며 살았다. 봄이면 앙칼진 참다람쥐의 울음소리에 잠을 깨고, 뒤가 개운치 않아 돌아보면 야생 너구리가 문이 없는 그의 집 뒤뜰을 유유히 지나칠 때도 있었다. 집 뒤뜰로 나가 오른편으로 몇 발짝만 옮기면 마을 어귀에나 있을 법한 당산나무 급의 밤나무가 주인도 없이 에멀무지로 자라고 있다. 가을에 주워둔 밤은 냉장고에 잘 두었다가 찾아오는 이웃들에게 주면 좋은 선물이 되었다. 툭툭 밤새 알이 찬 밤송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잠든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도 하지 않고 뒤뜰로 나가 밤을 줍곤 했다. 하지만 줍는 것만 할 줄 알았지 알뜰히 챙겨 먹지는 못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너나들이 이웃에게 선심을 쓰는 편이 나았다. 시골 사람들은 주인 없는 열매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김호가 챙겨주는 밤은 퍽이나 달가워했다. 밤송이가 떨어질 때마다 다람쥐처럼 모아둔 밤이 냉장고 안에서 숙성되어 비록 작은 크기였지만 옹골지게 단맛을 냈기 때문이다.

밤나무에서 몇 발짝만 더 떼면 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산책로는 장승촌 공원과 산림박물관으로 이어져 있어 가을이 되면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소요를 일으킨다. 어떨 땐 김호의 집 뒤뜰로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화장실을 찾거나 허락도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갈 때도 있다. 아무리 시인이라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당을 개방하거나 집안 깊숙한 자리에 있는 화장실을 내주지는 않는다. 대신, 친절하게 공용화장실을 안내해 준다.

“북쪽으로 이백 미터만 걸어가시면 공원 화장실이 있어요.”

삼백예순일 뒷문도 없이 개방된 공간이 낯선 이들이 허락 없이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는 아니라는 걸 그는 꽤 분명히 한다. 그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예외가 없다. 야생동물의 침입은 방울이가 알아서 막아준다. 덩치가 작아서 만만해 보이지만 산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도 짖는 일을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방울이도 어미젖을 떼자마자 김호와 함께 시골살이한 덕인지 사람이 들어오면 짖지 않고 동물에게만 죽어라고 짖어댄다. 이 녀석이 희안하다는 건 김호가 아닌 이웃집 아저씨가 먼저 알아봤다.

"요 녀석이 참말로 요물일세!"

"왜요?"

"앞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짖지 않는데, 뒷구녕으로 들어오면 사정없이 짖어대니 말이여!"

"우리 방울이가 그랬나요?"

"고녀석 참 허는 짓이 귀염성스럽단 말여. 인물도 훤하고. 내가 델꼬가고 싶은디."

"방울이는 식구인 걸요. 어릴 때부터 달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얜 안 돼요."

김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이고, 거 사람 참. 농일세 농이여!"

이웃집 아저씨가 실없이 웃어 재꼈다. 방울이는 날 때부터 사람 손을 탔지만 가끔 짐승의 본성을 드러내 김호를 기겁하게 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두더지를 물어 죽였고, 어느 날은 산책 도중 지나가는 야생 쥐를 물어 죽인 적도 있다.

"맨날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고 사는 녀석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담!"

쥐는 그렇다 치더라도 두더지는 유난히 충격을 주었다. 두더지가 굴을 파고 나온 곳이 하필 방울이 집 근처였는지 방울이 집 주변으로 두더지가 파고 나왔을 법한 흙구덩이들이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짖어댈 땐 구덩이로 나왔다 들어간 두더지를 보거나 냄새를 맡은 게 틀림없었다.

산의 품속에 깃들어 산다는 걸 느끼게 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강연이 있는 날만 제외하면 매냥 오르는 산책로인 떡갈나무숲은 그야말로 자연의 보고였다. 말발굽 모양으로 굽어진 산책로는 아무리 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완만해서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호만큼 산책로를 자주 거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가 떡갈나무숲으로 가는 이유는 단순히 운동이나 방울이를 산책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매년 이른 봄이면 얼레지가 무리를 이루어 피어나고 뒤이어 백작약이 산삼 마냥 곳곳에 숨어 피어난다는 걸 아는 이는 김호뿐이었다. 사람들은 주로 취나물이나 버섯을 채취하러 숲을 휘젓고 다녔지만 꽃의 개화를 살피지는 않았다. 산책의 클라이맥스를 알려주는 스팟도 있다. 산책로의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올 뿐더러 남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장군봉과 신선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는 잠시 그곳에 머물며 방울이와 숨을 돌리곤 했다. 그러다 길이 나 있지 않은 샛길로 발을 옮겨 능선까지 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능선까지 길을 내면 장군봉까지 훌륭한 등산로가 될 것 같았다. 춘란을 캐기 위해 몰래 등산로를 벗어나 샛길을 따라 장군봉을 오고 간 적이 있었다. 샛길로 다니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란 걸 알아서 그런 이탈도 두어 번에 그쳤지만, 여운이 남았다.

가을이 지나고 서리가 내릴 때쯤 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내려왔다.

"웅웅 웅웅웅"

산이 배앓이를 하는 것 같은 소리가 골짝을 따라 내려왔다. 벌떼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자근거리던 소리는 점점 선명해져 기계톱의 굉음이란 걸 알아차렸다. 몇 날 며칠 산이 포효하는 것 같은 소리에 김호의 심기가 불편했다. 군에서 단풍나무 가로수가 붉게 물들어 절정을 이루기 전 마을과 산책로의 풀을 베어 주었다. 갈재는 내장산과 이어져 있어 관광객들이 마을까지 가을 관광을 왔다. 그러니 가을이 되면 마을도 가을 특수를 누린다. 가을 단풍이 모두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찾는 이도 없는 시기에 기계톱이 요란하게 돌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던 일이었다. 김호는 산림청이나 군에서 사계청소를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간벌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고 느꼈다. 사과 농사를 하는 마을 이장이 홍옥을 들고 김호의 집을 찾아왔을 때 산에서 들려오는 소음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사계 청소하는 거 맞죠?"

"사계 청소는 무신, 지금 단풍나무 심는다고 나무를 죄다 베어내고 있구먼."

"네! 단풍나무를 어디다 심는다는 거죠?"

"거시기, 마을 사람 몇이 군수를 찾아간 모양이여. 관광객들이 마을에 더 많이 올 수 있게 단풍을 심어달라고 말했다더구먼. 가을 성수기가 영 재미가 없다고 험시롱……."

"마을 사람 몇 명이 그랬다고 나무를 죄다 베어낸다는 게 말이 되나요? 군수를 찾기 전에 마을 회의를 열어 의견을 모았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게다가 산에 손을 대려면 타당성 조사도 하고 환경 조사도 하고 해야 할 텐데, 그럴려면 시간도 상당히 걸릴 테고."

“군수야 뭐 마을 대표로 사람들이 찾아온 걸로 여겼을 것이구먼. 나한테도 아무 말 없이 찾아간 것인깨 나라고 우찌 알것어. 그라고 단풍나무 심으면 좋지 뭘 그려.”

“단풍 나무야 가로수로도 충분한데, 마을 산책로까지 죄다 단풍나무를 심을 필요가 있을까요. 게다가 지금 산책로는 참나무 숲이 너무 좋잖아요.”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지만 이장은 이 일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갈했다. 단풍나무 가로수가 즐비한 마을은 가을이 되면 단풍객들이 붐볐다. 이런 단풍객들을 상대로 마을의 상가들은 가을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의 가을 특수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했다.

"옛날에는 이곳이 산닭으로 유명했었구먼. 관광차가 들어오면 정신없이 바빴다니깨."

김호가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사장님이 이곳의 옛 사정을 말해주곤 했다.

"그러면 지금은 예전만 못하다는 건가요?"

"지금이야 성수기라고 헐 수도 없구먼. 아이엠에프 이후에 식당들이 문을 많이 닫아 버렸제. 사람들 발길도 영 뜸해지고. 이곳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 돼버렸당깨로."

아무리 예전만 못 하다지만 가을이 되면 마을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아이엠에프 이전의 성수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능할 수 없지만, 지금은 비어버려 흉가가 되어버린 빈집들이 모두 식당이었다는 걸 보면 예전과 사정이 많이 달리진 건 사실인 것 같았다.

사정을 알게 된 김호는 기계톱이 돌아가고 있는 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산책로를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 김호가 무르츰하게 산모롱이를 바라보았다.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가 베어져 나가고 있었다. 김호가 가장 좋아하는 떡갈나무도 모조리 사라졌다. 올가을까지만 해도 황금빛으로 물들어 일렁이던 떡갈나무가 사라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참나무가 베어져 나간 자리로 어린아이 키만한 단풍나무들이 언 땅 위에 부려져 있었다. 산책로에 가로수를 조성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올라온 김호는 이 처참한 관경에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백작약이 은거하던 너덜겅 골짜기 일대의 참나무들이 집중적으로 잘려 나갔고, 산책로의 중심 구간에 있던 참나무들이 산고개의 허리 너머까지 베어진 것이었다. 그날 이후 김호는 산책로를 찾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단풍 식재는 겨울 내내 지루하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벌목군들이 돌아간 저녁이면 “웅웅 웅웅웅” 산의 울음 소리가 골짝을 타고 내려왔다.

겨울 동안 눈이 내리는 날이 많아 단풍 식재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봄이 되자 김호는 산책로 가장자리로 수국을 심기 위해 모종을 준비했다. 산책로로 수국을 심는 일은 오래전부터 시작한 일이라 몇 해가 지났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장승촌 공원에선 장승 깍는 어르신이 수국을 심어 올라왔고, 김호는 반대편에서 수국을 심어 산책로의 클래이맥스의 스팟을 향해 올라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군에서 풀을 벨 때면 수국과 풀을 가리지 않고 베어버리는 바람에 이듬해엔 예초기가 닿지 않는 가풀막한 곳에 수국을 심어 놓곤 했다. 심고 베어지기를 반복했지만 매년 살아남아 꽃을 보여주는 수국이 있었기에 봄이나 이른 여름이면 수국을 심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떡갈나무가 사라진 산책로를 수국 모종을 가지고 올랐다. 산책로 길가에 심어진 단풍 나무들이 겨우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 죽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김호는 마음이 시뜻해져서 모종 심기를 뒤로한 채 단풍 나무를 집중적으로 식재한 산책로 중심구간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너덜겅 돌무더기가 쏟아져 내려 골짜기를 이룬 곳부터 높은 언덕이 이어지는 지점까지 제대로 살아남은 나무가 거의 없었다. 사실 이런 결과는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서리가 내린 땅에 나무를 심었으니 말이다. 무지근해진 김호가 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사람의 기척이 들렸다. 장승촌 공원의 장승 깎는 어르신이었다. 허연 머리를 길러 뒤로 묶은 어르신의 모습은 흡사 산신령과 비슷했다.

“어르신…….”

김호가 뒷말을 잇지 못한 채 어르신을 바라봤다.

“수국 심으로 왔구먼.”

“단풍나무가 다 말라 죽었어요. 이럴 거면서 멀쩡한 떡갈나무는 왜 베어낸 거죠.”

“실없는 짓들을 하고 앉았지. 겨울에 무슨 나무를 심는다고…….”

“저는 적어도 나무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단풍나무는 추위에 강한 종인가 보다 그러면서요.”

“어떤 나무라도 마찮가지여. 서리 내리고 언 땅에 뿌리가 제대로 내릴 수가 없는 일이지.”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놨으면 책임을 져야지……. 자연 그대로 이미 관광지로 손색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산을 이렇게 망쳐 놨는데, 책임은 누가 지는 건가요.”

“결국 마을 사람들이 신경 써야 할 일이야.”

김호와 어르신이 민둥산이 된 산허리 깨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돌아섰다. 어르신은 장승촌 공원을 향해, 김호는 반대편으로 수국 모종을 하나씩 심으며 내려갔다. 참나무가 사라진 숲은 순식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봄이면 김호의 아침을 깨우던 앙칼진 참다람쥐의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마당을 나오면 담을 타고 놀던 앙증맞은 새끼 다람쥐의 모습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겨우내 김호의 집 천장에 둥지를 틀고 지내다가 봄이 되면 새끼들과 이소하던 하늘다람쥐도 모두 사라졌다. 떡갈나무의 여린 새순이 손을 흔들던 산책길이 사라진다는 건 그들이 품고 있던 생명들도 사라진다는 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이제 김호의 집을 에운 숲이 내어주는 건 겨우내 묵혀둔 울음소리뿐이었다.

“웅웅, 웅웅웅…….”

기계톱이 나무를 베어내던 소리는 밤이면 울음소리가 되어 사라진 떡갈나무 숲에서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시인의 가슴을 두드려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