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잎사귀들이 허공을 채우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파랗고 하얀 꽃들이 앙증맞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마을 운동장을 감싸고 흐르는 게울 가로 사람들이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면서 산책객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추운 겨울에도 환기를 위해 하루에도 서너 번은 열리던 문화센터의 창문도, 꽃가루가 날리면서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수인의 자가용 위에도 하루가 멀다고 노란 꽃가루가 들러붙어 매일 세차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꽃가루 때문에 시작된 재채기는 오히려 실내로 들어왔을 때 심해졌다. 그러니 빨래를 밖에 내다 너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외출복은 어김없이 세탁기로 들어갔고, 장마 때나 돌리려고 사놓은 건조기는 꽃가루 철부터 부지런히 돌아갔다. 솜털 같은 버들나무 씨앗과 노란 송화가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다니며 소요를 일으키는 존재는 동네의 조무래기들이었다. 이런 소요에 가세한 사람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문화센터 청소를 하는 황 씨였다.
“흐미, 노란 가루가 겁나게 묻어나네요잉.”
밀대를 밀던 황 씨가 수인에게 말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수인이 고개 들어 황 씨를 보며 미소 지었다.
“꽃가루가 안까지 많이 들어오죠. 청소하시기 번거로우시게…….”
“말도 말어요. 바깥 창문도 아주 엉망이구먼요. 만날 닦아도 하루 지나면 소용없고…….”
황 씨는 말만 그렇지 얼굴은 활기로 가득했다. 그는 마치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바깥 창까지 다 닦으시려니 힘드실 텐데, 살살하셔요. 꽃가루가 한창 날릴 땐 그냥 두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수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황 씨가 알아서 알뜰히 꽃가루를 닦아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황 씨가 부지런하게 닦아놓은 실내에선 재채기가 나오지 않았다.
“지때 닦아 둬야지, 안 그러면 일이 더 많으니께요. 제가 알아서 할 것인께 걱정 마셔요.”
황 씨는 어쩐지 신이 난 사람처럼 부지런히 다니며 꽃가루를 닦아냈다. 그런 황 씨의 모습을 보며 수인은 꽃가루가 날려도 봄날은 봄날이라고 생각했다. 어깻바람이 나서 바깥 창을 닦으러 나간 황 씨가 잠시 후 차분해진 표정으로 들어왔다.
“거시기, 내일 연가를 좀 써야 할 것 같은디…….”
황 씨가 수인에게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할 때면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수인은 그런 황 씨를 볼 때면 예의가 몸에 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를 대하는 사람도 같이 공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러세요, 어르신.”
수인이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고것이 동서가 세상을 버려버리는 바람에 장례식장에 갔다 와야 쓰겠어요.”
“어르신보다 나이가 아래이신 모양이네요.”
“야, 몇 년 병원 신세 지다가 결국 먼저 가버리네요.”
“섭섭하시겠어요.”
“그렇죠. 이렇게 갑자기 갈 줄 누가 알았것어요.”
“잘 다녀오세요.”
청소를 마친 황 씨는 수인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서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다음 날 황 씨는 수인보다 먼저 나와 건물 주변의 풀을 뽑고 있었다. 수인이 황 씨를 발견하곤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르신, 일찍 오셨네요. 아직 아침엔 날이 찬데,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녀요.”
수인이 서둘러 센터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온 수인이 황 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장례식장은 잘 다녀오셨고요?”
“덕분에 잘 다녀 왔구먼요. 근디, 참말로 희안하더란 말입니다.”
“뭐가요?”
“동서가 죽기 전에 병원에 자기를 데리러 누가 왔다고 그런 말을 했다더만요. 참말로 희안허지요.”
“그러게요. 정말 저승에서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는 걸까요?”
“그런 거 같어요. 울 아버지도 그라고 돌아가셨는디…….”
“아버님께서도요!”
“야, 그것도 훤한 대낮에 그랬다니께요.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밥상 받아 놓고 돌아가셨으니께요. 마당에 자기를 데리러 사람들이 와있다 그라면서 '밥은 못 먹고 가야겠다' 뜬금 없는 소릴 허더래요. 그 길로 방에 가서 드러눕더니 일어나덜 못 했응께요.”
황 씨는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황 씨도 어렸을 때라 황망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은 그저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기억했다.
“정말 기이하네요.”
“옛날부터 사람들 허는 말이 그냥 허는 말이 아닌 게벼요. 자기 데리러 왔다고 그라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니께요.”
“아버님까지 그러고 돌아가셨으니, 정말 믿으시겠어요.”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소릴 허고 갔으니 정말 저승에서 사람을 보내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게지요. 어머니헌테 이야기 듣고 그런 모양이다 혔는디, 이번에 동서도 누가 왔다고 그랬응께, 참말로 그런 게 있는 것 같기도 허고…….”
황 씨는 저승 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늘어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밀대 질을 하고, 손걸레로 유리창을 닦았다. 정작 수인은 이야기에 사로잡혀 어린 시절 목격했던 기이한 사건을 떠올렸다. 그저 헛것을 보거나 가위에 눌렸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선명했던 기억.
수인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독감에 걸려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한창 병치레 중이었다. 수인이 평생 살면서 손에 꼽을 만큼 아팠던 때라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독감일 뿐이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독감 키트로 검사를 한 것도 아니고 환자의 진술만 듣고 약 처방하는 게 다였던 시절이었다. 고열과 통증으로 몇 날 며칠을 자리에 누워 죽조차 제대로 넘기질 못했으니 하루가 다르게 몸이 말라갔다. 낮보다 밤에 더 잠을 이루지 못해 몸을 뒤척이다가 창문으로 비친 달빛에 눈을 떴다. 그날따라 유난히 달이 밝아 방 안이 훤했다. 창문 맞은편 벽에 걸린 거울이 달빛에 반사되어 마치 거울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수인은 자신도 모르게 빛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울 속에는 수인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반사적으로 거울 반대편을 보았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수인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서 쿵쾅거렸다.
‘저승사자다.’
수인이 속으로 외쳤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갓으로 보이는 모자를 쓴 사람을 인식한 순간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몸을 옥죄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몸이 눌렸다. 사력을 다해 몸을 누르는 뭔가를 밀어냈다. 수인의 몸이 어딘가로부터 빠져나온 건지, 몸을 누르고 있던 뭔가가 빠져나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부터 빠져나온 건 분명했다. 정신을 차리고 괴괴한 달빛만 남은 방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 꺼지지 않은 조명 하나가 비취고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수인은 식은땀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일으켜 부모가 잠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귀가 밝은 수인의 어머니가 기척을 듣고 눈을 떴다.
“왜, 잠이 안 와.”
“오늘은 여기서 잘래.”
수인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품을 파고들었다. 수인의 어머니는 땀으로 흥건해진 수인의 등을 쓸며, 아무 말 없이 딸이 잠들 때까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수인은 자신의 방에 있던 벽걸이 거울을 내다 버렸다.
“멀쩡한 거울을 왜 버렸어?”
문 앞에 내다 놓은 거울을 본 수인의 오빠가 거울을 도로 들고 들어오며 물었다.
“재수가 없는 물건 같아서.”
“재수가 없긴, 물건일 뿐인데…….”
“그거 집에 들이면 안 돼!”
수인이 뜨악해서 말했다
“하, 기집애 진짜. 내가 쓰면 되잖아.”
“거기서 저승사자 봤단 말이야.”
“저승사자?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는. 지금 장난하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척해진 수인의 모습을 찬찬히 보더니 이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젯밤에 내가 똑똑히 봤단 말이야. 진짜 저승사자였어.”
“거참, 희한하네. 어제 옆집에 초상이 난 모양이던데. 청사초롱 내 걸린 거 너도 봤지?”
수인의 오빠는 문득 수인의 방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이웃집의 청사초롱이 떠올랐다. 오빠의 말을 들은 수인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파서 집에만 있었는데, 당연히 못 봤지. 그러면 어제 내가 본 게 허깨비가 아닌 거야? 옆집에 저승사자가 온 걸 내가 봤을 수도 있는 거잖아.”
“에이, 이 거울 좀 아깝긴 한데. 저승사자 나온다니까 버리지 뭐.”
수인의 오빠가 슬쩍 웃으면서 농담처럼 받아쳤다.
“이 거울 오빠가 밖에서 주워온 거울이잖아. 오빠가 책임지고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버리고 와. 나 무섭다고.”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치워버릴게. 그나저나 너는 꼴이 그게 뭐냐?”
수인의 오빠도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막내 여동생이 정말 죽을 만큼 아팠나 싶은 생각이 들어 순순히 거울을 들고 나갔다. 수인은 그렇게 저승사자를 본 경험을 오빠에게 털어놓았고, 결국 온 식구가 그날의 일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수인에게 저승사자를 언급하거나 물어오지 않았다. 그저 거울 하나 잘못 주워오는 바람에 수인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라 여겼다.
“이놈의 종내기, 거울 같은 걸 주워오고 그래. 옛날부터 버려진 물건은 함부로 집에 들이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 바깥에 있는 물건 함부로 가져오지 마.”
수인의 어머니는 애꿎은 아들에게 면박을 주었다.
그렇게 거울이 사라지고 수인은 병마에서 벗어나 다시 학교를 나갈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수인이 어떤 영적 존재와 대면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에서 희미해져 까마득히 잊었던 기억을 황 씨의 이야기 때문에 환기하게 된 것이다. 주워온 거울과 이웃집 입새에 걸린 청사초롱과 유난히 밝았던 달빛까지 불가사의한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해졌다. 증명할 수 없지만 ‘저승사자다’라고 속으로 외칠 만큼 선명했던 목격을 어떻게 허깨비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인이 생각 속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황 씨가 청소를 끝내고 인사를 했다.
“다음 주에 봐야겄네요.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 날 보게요.”
“네, 어르신 주말 잘 보내세요.”
황 씨가 센터 문을 열자 수인이 재채기를 했다. 황 씨가 밀고 나간 곳으로,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들어 왔다. 황 씨는 그와 문에서 마주쳤지만 마치 아무도 못 본 사람처럼 사내를 무심코 지나쳤다. 바깥에서 뛰어놀던 조무래기들의 소리가 흩어지고 달빛을 받은 그 날의 방안처럼 괴괴한 고요가 흘렀다. 다시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수인이 계속 재채기를 해댔다. 밀려오는 재채기에 눈물과 콧물이 한꺼번에 흘러나왔다. 휴지로 코를 풀고 눈물을 닦았다. 분명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센터 안으로 들어왔는데,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수인은 센터 안을 휘둘러보았다. 분명 문이 다시 열리지 않았는데 들어왔던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전기가 통한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창밖엔 노란 꽃가루가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대기를 점령했고, 황 씨가 부지런히 닦아놓은 유리창은 다시 꽃가루가 들러붙어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