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약속대로 비행기 타 본 거야.”
수인이 비행기 안에서 ‘두말하지 않기다’라는 의미로 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비행 시간이 너무 짧잖아. 해외로 나가야 비행기 탔다고 할 수 있지, 이게 뭐야.”
비행기를 태워주겠다는 약속이 제주도행이 될 줄은 몰랐는지 윤은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요즘 외국 나가는 게 뭐가 특별한 일이라고 해외여행 운운이니. 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해외로 다니는 거야. 우리나라도 몰라서 그렇지 아름다운 곳이 얼마나 많은데.”
윤은 지나치게 고집스러운 아이는 아니었지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뭘 알겠나 싶었지만 어떨 땐 윤이 나름대로 논리 정연하게 자기 주장을 펼칠 때가 있었다. 수인과 산이 윤을 이해시킨답시고 살짝 설명이 길어질 때가 있었지만, 윤이 이내 딴청을 피우는 바람에 그들의 설명이 제대로 먹히기는 어려웠다. 수인과 산이 윤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은 끊임없이 아이의 눈치를 보는 일과 다름없었다. 비행기를 태워주겠다는 약속은 윤이 학교에서 가기로 한 일본체험 학습에 빠지게 되면서 아이를 달래기 위해 제안한 것이었다. 일본의 초등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어 3박 4일 동안 홈스테이와 관광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여행이었다. 방사능 노출과 여진의 문제를 뒤로 한 채 강행된 일본여행이 끝나고,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윤의 바람대로 여름에 비행기에 올랐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산은 방학 동안 보충 수업과 연수로 일정이 꽉 짜여져 있었다. 결국 겨울방학까지 기다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오게 되었다.
3박 4일의 일정 중 이틀은 성산일출봉과 한라산 등반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을 때, 겨우 잠재워 놓은 아이의 서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극기 훈련이잖아. 여름에 왔으면 좋았잖아. 그럼 바닷가에서 수영하면서 놀았을 텐데…….”
“아빠가 바쁜데, 그럼 열 일 제쳐 놓고 여행 다니니? 내년 여름에 가자고 했더니, 올해 넘기기 싫다고 겨울방학 때 가자고 한 건 너야.”
“다른 친구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데, 우리 집은 엄마 아빠 하고 싶은 대로야.”
일본 여행으로 이전보다 더욱 똘똘 뭉친 친구들 사이에서 윤은 좀처럼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친구들과 함께 일본에 가지 못한 것보다 단체 생활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윤을 더 서럽게 했다. 이럴 때면 수인과 산이 방사능 부작용과 지진의 위험성을 알려주며 여행에 불참한 이유를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학교에서 일본 여행을 가기 전 수인이 유럽에서 제시한 방사능 오염 지역을 촬영한 사진을 담임선생에게 공유하기도 했었다. 담임선생도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이번 여행을 취소하는 게 맞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계획된 것을 무산시키는 일은 담임으로선 여러모로 어려운 일인 듯했다.
“어머님, 제가 이곳으로 부임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뜻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말씀은 드려 보겠지만, 교육과정 상 이미 계획된 내용을 바꾸기도 어렵고, 아이들 숙소와 항공권도 모두 예약한 상황이라 일이 이만저만 복잡한 게 아니라서……. ”
수인은 담임 선생이 제법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안전 앞에서 선생 개인의 입장을 내세우는 게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꼭 선생이 아니라도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위해 그런 불편함을 덤덤히 감당했으면 했다. 이후 일본 체험에서 빠지는 학생들은 수수료를 제외한 개인부담금을 받게 될 것이란 안내문만 덩그러니 통보되었다. 수인은 담임에게 자료를 건네주면서 학부모들에게 다시 의견을 물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학부모 회의가 소집되거나 다시 한 번 학부모의 의견을 묻는 안내문은 없었다.
윤도 막연하게 남아 일본이 방사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은 선생님의 말이라면 착실하게 새겨듣고선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된 것마냥 당당하게 대거리를 해댔다.
“엄마, 나고야 방사능 수치는 우리나라 방사능 수치보다 낮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안전하다고 하셨단 말이야.”
일본영사관 측에서 말하는 내용을 교무부장이 아이들에게 알려준 모양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부모가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학교 일정에서 자신만 빠져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윤이 어렸을 뿐이다. 도무지 꺽일 것 같지 않은 윤의 기세를 꺽은 건 비행기를 타고 가족 여행을 가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윤의 기분을 풀어준다고 온 여행에서도 뭔가 많은 설명을 해야 했고 이해를 시켜야 했다. 수인은 내심 괴심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의견에 따라준 게 어딘가 싶었다.
“한라산은 제주도 사람들도 안 가본 사람들이 많다더라. 아마 친구들 중에 한라산 등반한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윤은 대답은 없었지만, 수인의 말에 무구한 눈동자를 빛내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짧아진 해 때문에 백록담을 보고 오려면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올라가야 했다. 여기에 왕복 9시간을 걸어야 하고 해발 천 미터가 넘으면 아이젠을 장착하고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 윤에겐 인생 최대의 산행이자 극기 훈련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리 제주도라지만 깜깜한 새벽 한라산 등반을 위해 짐을 내린 성판악의 추위는 매서웠다. 수인은 숙소에서 나올 때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로 이를 다닥다닥 부딪고 있는 윤에게 우엉차를 우려 건네주었다. 우엉차의 따뜻한 기온이 온몸으로 퍼지자 얼어 있던 몸이 잠시 풀리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수인은 윤에게 넥워머와 귀마개가 달린 털모자를 씌워 눈만 남기고 단단히 무장을 시켰다. 세 가족이 백록담 등반 준비를 끝냈을 땐 눈만 뻐끔하게 드러난 세 구의 미라 같았다. 성판악에서 백록담 등반을 시작한 건 새벽 6시였다. 12월의 산속은 아직 깜깜했다. 산이 윤의 등산용 스틱의 높이를 조절해 주며 말했다.
“윤아, 백록담은 해발 1950m야. ‘한 번 구경 오십시오.’라고 외우면 한라산 높이를 오래 기억하게 돼.”
수인이 피식 웃음소리를 흘렸다. 산의 너스레가 윤에게 먹히지 않자 그가 곧 말 머리를 돌렸다.
“발바닥이 많이 아플 거야. 양말은 두 개 신었고?” 윤이 고개만 끄덕였다.
산은 윤의 어깨를 가볍게 두 번 두드린 뒤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수인은 윤의 뒤에 섰고, 세 가족은 머리에 랜턴 하나씩을 달고 발끝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높지 않은 오르막과 나지막한 돌계단을 오르는 일이 지루해질 때쯤 숲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하얀 눈에 반사되어 눈이 시렸다. 아침 안개가 옅어지면서 앙상한 가지 아래로 조릿대의 푸른 잎사귀가 나지막하게 펼쳐진 풍경이 드러났다. 잎사귀의 한 지점이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잠시 후 노루 같은 것이 세 사람을 놀라게 하며 튀어나왔고 순식간에 풀숲으로 달음질을 쳤다. 어둠과 추위 속에 등반을 시작할 때 윤을 어떻게 데리고 올라가야 하나 막연했다. 그러나 구멍이 숭숭 뚫린 돌을 밟으며 한라산의 낯선 풍경을 보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지면서 선두인 아빠를 제치고 앞서 나갔다. 백록담으로 가는 길은 돌 천지였다. 가파른 곳으로 오르는 계단은 돌을 밟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수월했다. 엉덩이 밑에 붙어 있는 것이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쯤 구름과 안개에 휩싸인 정상에 도달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백록담을 볼 수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가 보네. 조상을 원망해야 하나…….”
산이 1950m를 적어 놓은 표지석 앞에 삼각대를 설치하며 말했다. 세 사람은 구름과 안개 사이로 보일락 말락 숫자를 드러낸 표지석에 서서 유령처럼 사진을 찍었다. 발걸음을 돌려 몇 걸음을 내려왔을 때 거짓말처럼 구름과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정상에 있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름이 봉우리 아래로 깔리면서 부채처럼 펼쳐진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록담은 달의 표면에 있는 크레이터를 닮았다.
“윤아 우리가 딛고 있는 이곳이 까마득한 우주 같지 않니!”
수인이 말했다. 윤의 마음에 가득했던 불만은 구름과 함께 흩어지고,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 우주적인 풍경을 담았다. 윤의 까만 눈동자가 다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