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술 익는 마을

가양주

by 박진희

짙고 옅음의 차이만 있을 뿐 마을 어귀에 있는 못의 안개는 쉽게 도로 위를 침범했다. 낙덕지를 따라 난 굽어진 도로 위로 수인의 모닝이 비상 깜박이를 켜고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읍으로 들어서자 안개는 더욱 짙어져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섬진강 줄기로 이어지는 천이 읍을 관통하는 지형 때문에 두꺼운 안개가 읍 전체를 덮는 날이 대분분이다. 안개 낀 아침 풍경은 자못 신비로웠지만, 출근길 차량의 발목을 붙잡을 때가 많아서 마냥 분위기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다다른 곳은 장류촌에 있는 전통주 체험장이었다. 수인은 토요일 오전 시간을 할애해 이곳에서 전통주 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전통주는 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게 나오고 일관된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수인은 전통주 체험장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맛이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가 꼭 단점은 아니라는 것 또한. 오히려 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매력 때문에 전통주를 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김장한 뒤 이웃들에게 김치 한쪽씩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각자 담은 전통주를 가져와 함께 맛을 보는 재미로 동호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쌀을 주원료로 하여 만드는 전통주는 조건에 따라 변수가 많고 좋은 맛을 내기가 힘들어요. 만드는 데 드는 품을 생각한다면 가격을 매기기도 쉽지 않죠.”

수인이 체험장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체험장의 대표인 이규동 씨가 전통주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전통주는 밀 누룩에 멥쌀로 밑술을 만들고, 찹쌀로 덧술을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탁주는 거칠게 간 밀로 누룩을 만든 서민들의 술로 미분해 전분과 당이 풍부하고 낮은 알코올 도수 때문에 힘을 써서 일할 때 많이 마셨죠. 청주는 곱게 가루 낸 밀에 녹두와 보리 등을 첨가하여 만든 누룩을 주로 씁니다. 담백한 맛과 청명한 향이 좋은 청주는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내 숙성하여 만듭니다. 이는 투명하게 맑은 빛이 나는 술로 양반들이 주로 즐겼던 술이지요. 탁주와 청주는 각기 나름대로 풍미가 있어서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이규동 씨는 주로 탁주와 청주를 만들어 왔다. 오늘 수업의 주요 내용 역시 탁주와 청주다.

체험장에는 김은하 씨도 일찌감치 와서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맥주, 포도주, 전통주 등 다양한 술을 담아 왔다. 그런 그녀도 전통주 분야에서만큼은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 김은하 씨는 체험장에서 수업이 있는 날에 종종 나와 이론 수업을 경청하며, 체험활동을 도와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포도주, 맥주, 전통주 체험활동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고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술 빚는 법을 전수하는 정도였다. 수인도 은하 씨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직접 밀을 재배하면서 술을 담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의 삶의 모습이 궁금하여 방문했다. 그녀의 집은 사람보다 술을 위한 공간 같았다. 집에 들어서자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인은 그 냄새가 효모 냄새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어쩐지 환기가 잘되지 않는 집에 오랫동안 벤 찌든 불쾌한 냄새라고 느꼈다. 그날은 맥주 만들 체험 준비가 한창이었다. 체험 준비를 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정말 술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포도주와 맥주 같은 서양 술도 만들어 봤지만, 전통주가 가장 까다로운 것 같아요. 포도당을 효모가 먹고 알코올을 만들면 술이 되는 것인데 전통주는 곡식으로 술을 담기 때문에 전분을 포도당으로 만들고 포도당이 술이 되는 과정이 복합적으로 진행돼요. 그래서 전통주 담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죠.”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술 빚는 법을 배우고 있는 수인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선뜻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아직 입문자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까다로운 전통주를 어렵게 담으려고 하는 이유는 뭔가요?”

은하 씨의 설명을 한창 경청하던 수인이 말했다.

“딱 뭐라고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 지역에 가양주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집이 술맛이 달라서 다니면서 술맛을 보는 재미도 상당할 것이고…. 문헌에도 우리 전통주에 관한 내용이 매우 다양해요. 그때그때 필요한 술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고, 짧게 만드는 술도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거든요. 술 빚는 방식도 선생님이 누군가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데, 어떤 선생님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어떤 선생님은 일정한 온도 대신 계절의 따라 각기 다는 온도에서 만드는 술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저는 계절에 따라 다른 온도를 바탕으로 숙성시키는 계절주를 만들고 싶어요.”

“계절주라, 참 듣기 좋은데요. 술을 만드는 일이 전통적인 정서와 문화를 현대로 이어주는 효과도 있겠네요. 뭐랄까 함께 나누고 모이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겠는데요. 물론 그것도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요.”

“그렇죠. 저도 사실 술을 마시는 건 그닥 좋아하진 않아요. 여러 술을 빚어 약간씩 음미하는 정도예요. 전통주의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잔부터 바꿔야 해요. 포도주처럼 향을 모을 수 있는 잔 같은…. 포도주잔은 굉장히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거죠. 한국도 전통주에 관한 연구와 함께 향을 모을 수 있는 잔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수인은 전통주에 대한 그녀의 견해가 상당히 진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 농사를 지으며 술을 빚는 그녀의 삶은 무척 남루해 보였다. 당장 손익을 따진다면 도무지 발을 담글 수 없는 분야 같았다.

전통주 수업을 맡고 있는 이규동 씨와 김은하 씨는 같은 동호회 회원이다. 전통주 대회가 있을 때면 함께 술 빚는 걸 도와주며 나란히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물론 규동 씨의 실력이 한 수 위인 관계로 규동 씨가 대상이나 금상을 수상한다면 은하 씨는 동상을 수상하는 정도였다. 사실 동호회 사람들은 주로 전통주를 만들어 서로 교류하고 있지만, 술 전반에 대해서도 두루 알고 있다. 서양주든 전통주든 모두 발효의 과정을 거쳐 술이 되기 때문이다. 이규동 씨의 설명이 효모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포도주는 효모만 덜어가면 술이 됩니다. 쌀은 분자구조가 복잡해서 효모가 못 먹는 건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밀가루는 곰팡이가 아주 좋아합니다. 밀가루에 곰팡이 포자가 날라와 분해하는데 곰팡이가 밀가루를 먹기 위해 소화 효소를 내놓게 되죠. 소화 효소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균사라고 해서 영양 번식을 하고 파고 들어가면서 분해 효소를 남겨 놓고 가는 겁니다. 파고 들어가는 동안에는 덩어리가 열이 납니다. 30에서 50도까지 발열하는데요. 끝까지 들어가면 열이 나지 않습니다. 그걸 숙성시키고 안정시켜 누룩을 만드는 겁니다. 쌀을 쪄서 누룩을 만들면 효소에 의해 분해가 되는 거예요. 과열되면 효모가 손상을 입습니다. 그래서 일정 온도를 맞추기 위해 조절해줘야 하는 거죠. 밑술은 많은 숫자의 건강한 효모를 얻기 위해 쓰는 겁니다. 덧술과 찹쌀을 쪄서 넣으면 효모가 숫자가 많아지면서 온도가 막 올라갔다가, 온도가 내려가면 있는 효모들이 포도당을 먹고 지마제라는 효소를 내놓습니다. 이 효소가 포도당과 결합하면 알코올이 되는 것이죠.”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수업내용을 부지런히 메모했다. 수인 역시 흥미롭게 수업을 들으면 주요 내용을 적어 두었다. 술이 되는 과정을 모두 설명한 규동 씨가 사람들을 체험 부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은하 씨가 미리 가서 고두밥을 펼치고 있었다. 20평이 넘는 체험장에는 고슬고슬하게 익은 고두밥이 넉넉히 펼쳐져 있었다. 갓 지은 밥 냄새가 시장기를 자극했다. 사람들은 고슬고슬하게 익은 밥을 조금씩 떼어 맛을 보기도 하며 누룩을 섞어 치대기 시작했다.

“사케 병을 보면 청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순곡주라고도 하는데요. 쌀로 만들었다는 뜻이지요. 누룩만 다릅니다. 누룩 종류가 대단히 많습니다. 쌀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술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쌀 소비처로 이만한 게 없지요. 자동차 핸드폰 팔아서 쌀을 수입하는데 농민이 죽으면 아무 소용 없는 겁니다. 농민들이 누룩과 메주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농민대회에서 '박정희는 밀 농사를 박살 내고, 박근혜는 벼농사를 작살 낸다'라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99%가 미국산 밀이지요. 밀과 콩은 연작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논에다 콩을 심으면 직불금을 배로 받습니다. 밀 주로 미국 북부나 우크라이나 같은 추운 지역에서 나는데요. 우리 지역의 기후조건도 밀을 생산하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한산 서곡 주’는 한산 군에서 키웠습니다. 양조기술이 안정화되면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죠. 그렇게만 된다면 벼농사도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 농민도 성장하고 나도 먹고살 수 있는 길이 되지요.”

이규동 씨는 사람들이 쌀밥에 누룩을 치대고 있는 동안 전통주의 생산이 품고 있는 다양한 전망에 관해서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을 들은 수인은 그때서야 은하 씨가 밀 농사를 짓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밀 농사를 지어 우리 밀로 술을 담겠다는 한 여성의 고집이 출근길을 가로막던 까마득한 안개 같다고 생각했었다. 사뭇 신비로운 비경을 만들어내지만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마는 짓궂은 안개 말이다. 수인은 언제부턴가 아침 안개가 마을을 뒤덮을 때면 저절로 가양주를 떠올렸다. 집집이 익어가는 가양주에서 뽀글뽀글 기공이 터지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것도 같았다. 안개 속에선 마을마져 익어가고 향그러운 가양주 냄새가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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